지난달 5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줄곧 외부활동을 자제해 왔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떠났다. 삼성 측은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함구하고 있지만 신성장동력 확보, 글로벌 거래처 관리 등 구속 이후 정체된 경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 행동에 나선 걸로 추정된다.
25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립 80주년이었던 지난 22일 유럽으로 출국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요 사업 파트너와의 면담이 목적이지만 구체적인 일정이나 면담 상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출장기간 지멘스 BMW 폴크스바겐 등 삼성전자 주요 거래처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만나 경영 현안을 논의할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부회장이 사외이사를 지내다 작년 4월 물러난 글로벌 자동차회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지주사 엑소르그룹 경영진과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이 부회장 구속 이후 1년 가까이 삼성전자의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관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우려가 그간 삼성전자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부회장이 국내 활동보다 해외 현장 점검에 먼저 나선 것 역시 해외 사업환경 복원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87%가 해외 사업에서 발생하며, 생산ㆍ판매 조직도 79개국에 걸쳐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 경기 화성시 반도체공장 기공식 등과 23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는데다 비판적 여론도 지속되고 있어 경영일선에 당장 복귀하기 보다는 막혀있던 글로벌 거래처와의 교류부터 뚫는 게 부담이 덜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2000년대 들어 해외 CEO 등과 넓은 인맥을 쌓아왔다.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2016년 9월 인도 방문이 마지막이었다. 2014~2016년 이 부회장이 최고결정권자로 성사시킨 대형 인수합병(M&A)은 14건으로, 2016년 11월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글로벌 1위 전장업체 하만 인수를 이후로 1년여 동안 M&A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부회장이 대법원 측에 별도로 출장 계획을 사전에 알린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16년 말 검찰이 출국금지를 요청해 법원이 받아들인 바는 있지만 이후 집행유예 판결이 나온 단계에선 별도의 추가 출국금지 요청이 없는 이상 사전 고지 없이도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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