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러 외교관 23명 이미 추방한 가운데
EU 회원국 20곳도 이르면 26일부터 동참
러시아가 자국 출신 전직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을 영국 영토에서 독살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할 가능성이 높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영국이 23명의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이미 추방한 가운데,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마저 ‘대러 보복 조처’ 대열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과 유럽 당국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한 WP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의 연대를 보이는 의미에서 20명, 또는 그 이상의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신문에 이 같은 사실과 함께 “결정은 백악관에 달렸지만, 미국과 가까운 동맹국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러시아의 암살 시도에 대한 서방세계의 상징적이고 극적인 단계를 취하면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CNN 방송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 외교관 추방을 건의했다고 전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미 언론들은 덧붙였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동맹국과의 연대를 보여주고 러시아의 국제 규범 위반에 책임을 묻기 위한 다양한 옵션들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추방할) 준비가 돼 있지만, 그 이전에 유럽의 동맹국들이 러시아에 대한 비슷한 조처를 하는 것을 확신하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외교관 추방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르면 26일 그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고 WP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비난을 삼가고 있긴 하지만, 최근 분위기로 볼 때 미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EU 회원국들 상당수가 “러시아가 전직 스파이 독살 시도의 배후”라는 영국 정부의 주장을 적극 지지하며 대러 대응 조치에 속속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체코, 덴마크, 라트비아 등 20개 안팎의 EU 회원국들이 영국의 뒤를 이어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가장 먼저 이 같은 방침을 정한 라트비아의 경우 이르면 26일 공식 발표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EU 정상들은 러시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러시아 주재 EU 대사도 소환키로 했다.
러시아는 영국과 EU 움직임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4일 영국이 근거도 없이 러시아를 배후로 몰고 있다면서 “사건 규명을 지원하고 협력하려는 러시아의 바람은 영국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영국은 가능한 한 러시아와의 위기를 심화하는 게 목적”이라며 “영국이 동맹국들에게 (러시아와의) 대결 조치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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