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경찰 아르노 벨트람 중령
“대신 인질 되겠다” 현장 진입
테러범 흉기ㆍ총에 맞아 숨져
佛 “그는 영웅” 국가 차원 애도
“그는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걸어갔다.”(가디언)
지난 23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남부 소도시 트레브의 한 슈퍼마켓. 이슬람극단주의 무장세력인 IS(이슬람국가) 추종자가 벌인 총격 테러 현장에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인질을 자청했던 경찰관이 끝내 숨을 거두면서 프랑스가 큰 슬픔에 빠졌다. 2015년 파리 연쇄테러 이후 잠잠하던 IS가 또 다시 등장하면서 테러 공포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 언론이 전한 현장 상황에 따르면 당시 총격 테러가 벌어진 슈퍼마켓에는 십여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잡혀 있었고, 수 차례의 총성이 터져 나왔다. 이 때 직원과 고객이 1명씩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이 협상에 들어가려는 순간, 프랑스 국가헌병대 소속 아르노 벨트람(45) 중령은 슈퍼마켓에 갇혀 있는 한 여성을 대신해 인질이 되겠다며 주차장을 가로 질러 갔다. 벨트람은 신분은 군인이지만 치안을 담당하는 군인경찰(gendarme)로 고위간부로 알려졌다.
슈퍼마켓에 진입한 벨트람은 곧바로 테러범 르두안 라크딤(25)의 눈을 피해 자신의 휴대폰을 통화 상태로 켜놓은 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고, 덕분에 바깥에서 동료들이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라크딤은 협상보다는 총성으로 응답했고, 곧바로 진압에 나선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3시간 만에 인질극은 끝났지만, 벨크람은 이미 총알 두발을 맞고 흉기에도 수 차례 찔린 상태로 발견됐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하루 만인 24일 오전 숨졌다. 이로써 이번 총격 사건 희생자는 총 4명으로 늘었다. 앞서 라크딤은 트레브에서 15분 떨어진 중세 유적지 카르카손에서 차량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시민 1명을 숨지게 했다.
프랑스는 벨트람을 영웅이라 칭하며 추모에 나섰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 궁은 벨트람 사망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애도를 표하겠다고 발표했다. 취임 이후 처음 IS 관련 테러 사태를 맞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애도 메시지가 공유되는 등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벨트람의 어머니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평소에도 자신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며 “그가 인질이 되겠다고 자청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혼인신고만 한 채 결혼식을 못 치른 아내와 6월 9일 교회에서 예식을 가지려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에선 이번 총격 테러로 한동안 잠잠했던 IS에 대한 공포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테러범 라크딤은 모로코계 이민자 출신으로, 인질극 도중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IS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고, IS 역시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당국은 이번 총격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배후에 IS 조직이 연계돼 있는지에 대해 추가 수사 중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2015년 130명이 숨진 파리 연쇄 테러 이후 프랑스가 대대적으로 시행한 대테러 예방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불법 무기 소지 및 마약 복용 전과가 있는 라크딤은 2014년부터 프랑스 정보당국(DGSI)이 정한 국가 안보 테러 요주의 인물 등급인 S등급으로 분류됐지만, 구체적인 테러 범죄 시도 정황이 없다는 이유로 올해 초부터 감시 대상에서 빠졌다고 프랑스 BFM TV는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는 파리 테러 이후 2년 간 유지했던 국가비상사태를 지난해 11월 종료한 뒤 더욱 강화된 대테러 법을 시행하고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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