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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헌법개정과 민주주의

입력
2018.03.25 13:3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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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개헌 3부작 발표로 본격적 헌법개정 논의가 시작되었다.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헌법상의 헌법개정 요건으로 인해 대통령의 개헌안이 그대로 새 헌법이 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청와대가 주도해서 정치권과 국민 사이에서 구체적 헌법개정 방향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 시점에서 헌법개정 절차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을 민주주의 원리와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인 의사결정은 다수결원칙에 그 정당성의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통상의 다수결원칙은 표결에 참여한 의사결정자 과반수찬성으로 권위 있는 의사결정에 이르게 되는 단순다수결 원칙이다. 헌법 제49조가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단순다수결 원칙의 대표적 예외가 헌법개정 절차이다. 헌법 제130조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가중다수결원칙을 정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국민투표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공적인 의사결정 중 헌법개정에 대해서 유독 가중된 다수결원리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쉬운 설명은 입법사항에 비해서 헌법개정 사항은 국가적으로 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당연히 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설명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있다.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 설명 중 하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의사의 가변성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논의의 대상에 관한 다수의 의사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논의의 대상인 안건에 관한 결정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우리가 자신들의 지난 의사결정들에 대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매우 다른 생각들을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수결원리에 바탕을 둔 집단으로서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매우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히틀러와 나치의 정치적 주장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매우 적법하고 완전하게 다수결원리에 터 잡은 정치규칙을 통해서 그와 같은 지위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그에 대한 사후적 평가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것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의사의 이러한 가변성은 헌법상의 안전장치를 요구하게 되었고 입헌주의 그리고 헌법 개정에 대한 가중다수결원칙은 그 안전장치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결국 어느 시점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정치세력의 의지, 그리고 그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다수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헌법적 가치들은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헌법제정권력자의 결단이다.

모처럼 본격적 논의 흐름을 타게 된 헌법개정 논의가 실효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입헌주의의 본질에 관한 이러한 교과서적 설명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통상적 대의제 민주주의 과정에서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을 헌법 개정이라는 방식으로 우회하고 권위를 선점하려는 것이라면 이는 지금이라도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 내용 중 진정한 입헌주의 헌법적 가치에 관한 내용은 그 가치에 상응하는 엄격한 기준으로 헌법개정권력자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는 것인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반면 대의제 민주주의 기관으로서 의회에서 논의되고 정치적으로 합의되어야 하는 사안들은 진정한 입헌주의 가치의 실현을 위한 개헌 논의를 돕기 위해 지금이라도 과감하게 수정되고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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