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최고 스타는 여자컬링선수팀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홈페이지에 “이번 23회 동계올림픽에서 ‘갈릭걸스’라 불리는 한국의 다섯 여자컬링선수보다 더 큰 스타는 없었다”라고 소개하며 올림픽 영웅으로 꼽았다. 갈릭걸스팀 창단 스토리는 한 편의 드라마 같다. 2006년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 전국 최초로 컬링센터가 지어졌다. 당시 의성여고에 다니던 김은정이 친구 김영미에게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제안하면서 이 둘은 컬링이라는 생소한 스포츠에 입문한다. 영미에게 물건을 전해 주러 컬링장에 온 동생 경애가 얼떨결에 합류하고, 경애가 교실 칠판에 ‘컬링할 사람?’이라 써놓은 걸 보고 친구 선영이 합류한다. 이후 컬링 유망주 초희가 합류하면서 팀킴이 완성된다.
의성컬링센터가 지어지기 전까지 국내에는 컬링전용경기장이 단 한 곳도 없었다. 대중적 스포츠가 아니다 보니 이들은 국가대표가 된 후에도 관중 없는 썰렁한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곤 했다. 지원은 부족했지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그들은 올림픽 첫 출전에 은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 곳은 컬링경기장이라는 공간이다.
어릴 적 나는 동네 놀이터에서 주로 놀았다. 그네, 철봉, 모래밭이 있는 놀이터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 타기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당시 그곳은 아이들의 삶과 문화의 공간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 대신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을 하며 논다. 어떻게 노는가는 어디서 노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간이 다르면 활동과 문화가 달라진다. 놀이터, 체육관, 과학관, 박물관, 컬링장 등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시설을 갖춘 공간을 다른 말로 인프라라고 하는데 인프라는 문화의 기반이다.
의성여고생들이 처음부터 올림픽 메달을 따겠다고 결심하면서 컬링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재미로 시작했고 즐기다 보니 몰입할 수 있었고 어느 순간 실력자가 됐던 것이다. 외국 과학자들 중에는 어릴 적 과학관에서 과학의 재미에 푹 빠졌던 것이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동기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학관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과학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은 환경에 민감하다. 맹모삼천 이야기는 환경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말해준다. 공동묘지 근처에 살던 어린 맹자는 무덤을 만들며 놀았고, 시장 근처로 이사 간 후에는 장사 놀이를 하며 돈이 최고인 줄 알았고, 서당 근처로 이사 가니 글공부를 열심히 해 결국 훌륭한 학자가 됐다.
민주주의의가 처음 태동한 곳은 고대 그리스다. 그 중심에는 각자 의견을 주장하고 토론하면서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원형이 만들어졌다. 고대 로마에도 아고라를 본떠 만든 포럼이라는 곳이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토론이 이뤄진 광장이다.
프랑스의 초대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는 문화정책에 있어 많은 치적을 남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문화의 집’이다. 지역 주민이 연극, 공연 등을 접할 수 있는 공공문화공간을 만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자주 접하고 즐기는 공간을 가짐으로써 프랑스인의 문화적 수준은 한층 높아지게 된다.
컬링전용경기장 하나 없이 올림픽 메달을 꿈꿀 수는 없고, 과학관이 많지 않으면 훌륭한 과학자를 배출할 수 없다. 스포츠건, 과학이건, 예술이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활동이 시작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은 바로 공간이다. 과학관에서 과학의 재미를 즐기는 것은 과학문화고, 광장에서 토론하고 민주주의를 함께 만드는 것은 정치문화다. 컬링장에서 컬링을 즐기며 올림픽 스타로 성장하는 것은 스포츠문화다. 이렇게 문화는 공간에서 싹튼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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