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탁금 38억 인출 후 계좌 폐쇄해 은폐
법인카드 유용, 허술한 재산관리도 적발
서울의 명문 사학 휘문중ㆍ고교에서 명예이사장이 수년간 공금 40억원 가량을 빼돌린 비리가 적발됐다.
23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휘문중ㆍ고교가 속한 학교법인 휘문의숙은 2003년부터 교인이 5,000명 정도인 경기 한 교회에 일주일에 두 차례씩 체육관과 운동장을 예배 장소로 대여했다. 명예이사장 김모씨는 연간 건물 사용료 1억5,000만원 외에 교회 측에 학교발전 후원금 명목으로 기탁금을 요구한 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회에 걸쳐 38억2,500만원을 받아 냈다.
시교육청 감사결과 김씨는 법인 사무국장 박모씨를 시켜 기탁금을 법인ㆍ학교 계좌가 아닌 별도 계좌 5개에 입금시킨 뒤 현금과 수표로 전액 인출했다. 해당 금액은 고스란히 김씨 수중에 들어갔고 이들은 공금 횡령을 은폐하기 위해 돈을 빼낸 후 계좌를 곧장 폐쇄하는 수법을 썼다.
김씨는 법인 예산에도 부당하게 손을 댔다. 그는 권한이 없는데도 법인카드로 최근 5년 동안 2억3,900여만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 아들 민모 이사장 역시 단란주점 등에서 900여만원을 쓰는 등 직접 부담해야 할 비용 3,400만원을 법인회계에서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재산 관리는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휘문의숙은 학교 주차장 부지에 7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짓고 임대 사업을 시작했는데, 임대업 등록을 하지 않은 업체에 관리 전권을 위임했다. 보증금과 연 임대료를 각각 21억원씩 받고 건물을 빌려주면서 임대기간 보장과 전대(재임대) 특혜까지 줘 업무상배임 혐의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게 시교육청의 판단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부실한 재산 관리로 야구ㆍ농구부 학생들은 멀리 남양주까지 가서 훈련하는 등 학습권을 침해 받았다”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김씨 등 법인 관계자 4명을 사법기관에 수사의뢰하고 비리 관련자 징계를 법인 측에 요구할 계획이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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