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3개월 만에 금리 인상
0.25%P 올려 상단 1.75%로
한국 금리 1.5%보다 높아져
기재부, 한은 등 당국 대책회의
“외국인 자금 급격한 유출 없을 것”
美 연내 4회 인상 전망 잇따라
한국 가계부채, 고용 부진 등 탓
“금리 따라 올리면 후폭풍” 우려
미국 기준금리가 10년여 만에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며 이른바 ‘금리 역전’이 현실화했다. 수익성이 높은 투자처로 이동하는 돈의 생리상 국내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당장 급격한 자금 유출은 없을 것이라는 게 당국 설명이지만, 향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인상이 가속화할 경우 우리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매파 본색 드러낸 파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는 22일(한국시간) 종료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1.50%에서 1.50~1.75%로 0.25%포인트 올렸다.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만의 금리 인상이다. 이번 회의는 지난달 취임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처음으로 주재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 상단은 한국 기준금리(연 1.50%)을 0.25%포인트 웃돌게 됐다. 2005년 8월~2007년 9월 2년 동안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최고 1%포인트 높았던 시기 이후 10년 6개월 만이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 인상보다 눈길을 끈 것은 미국 경제성장에 대한 연준의 강한 자신감이었다. 연준은 이날 경제ㆍ금리 전망에서 올해 미 성장률을 직전(지난해 12월) 전망치 2.5%에서 2.7%로 상향조정했다. 내년 성장률도 2.1%에서 2.4%로 높였다. 실업률은 올해 3.9%에서 3.6%, 내년 3.9%에서 3.6%로 낮췄다. 물가는 올해 1.9%, 내년 2.0%, 내후년 2.1%로 목표치(2%)에 무난히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기준금리 인상횟수 전망은 올해는 3회로 유지했지만 내년은 기존 2회에서 3회로 늘리며 인상 속도를 높일 뜻을 드러냈다.
“자금 대량 이탈 가능성 작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은 이날 오전 회의를 열고 한미 금리역전에 따른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당국은 이번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됐던 사안이고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과 대외건전성이 양호하다는 점을 들어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유출될 가능성이 적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고형권 기재부 제1차관은 “우리나라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의 85%를 차지하는 주식자금은 국내경기 상황과 기업실적 전망에 좌우되며, 나머지 15%인 채권자금은 주로 주요국 중앙은행이나 국부펀드 등 중장기 투자자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도 외국인 투자금의 ‘엑소더스’(exodusㆍ대량 이탈) 가능성을 낮게 보는 분위기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좋다는 의미”라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호조는 한국 경제에도 득이 되기 때문에 증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채권시장에서도 한국 국채 금리가 국가신용도가 비슷한 유럽 국가보다 연 2%포인트가량 높아 선호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 한미 금리역전기에도 심각한 자금 유출은 없었다. 직전 금리역전기인 2005년 8월~2007년 9월 국내 주식 및 채권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16조2,183억원으로, 2007년 9월 말 외국인 투자자금(486조원)의 3.3% 수준이었다. 1999년 6월~2001년 3월 금리역전기에는 오히려 14조원 넘는 외국인 자금이 주식 및 채권시장에 순유입됐다. 이날 국내 금융시장도 코스피가 한때 2,500선을 돌파하며 상승 마감했고, 원ㆍ달러 환율도 0.4원 상승에 그치는 등 미국 금리인상 영향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미 금리인상 가속화 땐 한국 딜레마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연준이 미국 경기에 대한 낙관론을 근거로 금리인상 가속화를 예고하며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입장을 보였다는 분석이 대표적 근거다. 이날 FOMC 회의 종료 후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연준이 6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금리인상 횟수 전망치를 4회로 늘릴 것이란 전망을 일제히 내놨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도 “연준의 매파적 입장 강화는 달러화 강세, 금리 상승 등으로 이어져 자산가격 조정과 글로벌 자금흐름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금리의 연내 4회 인상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 현 기준금리와의 차이가 최대 1%포인트까지 벌어지는 만큼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전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미 기준금리 차가 1%포인트면 상당히 큰 차이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뚜렷한 성장세 속에 미국을 좇아 출구전략을 취할 채비를 하고 있는 유럽 또한 우리에겐 부담이다.
안에선 가계부채와 고용ㆍ소비 부진, 밖으로는 미국 통상압력에 따른 무역분쟁 등 경기 하방 위험(리스크)에 둘러싸인 한국 입장에선 미국 속도에 맞춰 금리를 올렸다간 후폭풍을 맞을 공산도 크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은이 금리를 급히 올리면 시장은 자금이탈 가속화 신호로 받아들이고 실물경기는 오른 금리 때문에 위축될 수 있다”며 “섣불리 금리를 올리면 되레 자금 유출을 부추기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미국, 일본 등 주요국과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을 확대해 외화 유동성을 확보하고, 확대 재정정책이나 기업투자 촉진책과 같은 미시정책을 금리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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