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사과를 하려면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얼굴 표정과 태도에서 잘못을 인정한다는 자책이 엿보여야 한다. 물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약속도 담겨 있어야 한다. 정확한 타이밍에 손을 내밀고 고개를 숙인다면 금상첨화다.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으면 다 무용지물, 오히려 거센 역풍에 시달릴 수 있다. 모든 것에 다 때가 있다지만, 특히 사과야말로 ‘지금이야’라는 바로 그 시점에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사태를 마무리하는 제대로 된 종결자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문무일 검찰총장과 이철성 경찰청장, 두 사정기관 수장들이 보인 최근의 사과 행보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20일 문 총장은 부산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씨를 찾았다. 부친 손을 잡고 검찰의 지난 잘못을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너무 고생을 많이 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찾아 뵙고 사과 말씀을 드리게 돼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문 총장 말처럼, 늦어도 너무 늦었다. 병상에 누운 박씨도 말했다. “(검찰 사과가) 오늘보다 어제가 더 좋았을 것”이라고. 박 열사가 숨진 뒤 31년 만에 이뤄진 사과가 제대로 받아들여졌을지는 회의적이다.
시위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숨진 고 백남기 농민 집을 15일에 찾은 이 청장은 그마저도 못했다. 백 농민 부인이 진정성 없는 때늦은 사과는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바람에 헛걸음만 했다. 문 총장이 낙제라면, 이 청장은 시험장 입실조차도 못한 셈. “아직 마음이 안 풀리신 것 같다”고 이 청장은 아쉬움을 내뱉었지만, 백 농민 사망 직후였어야 했을 사과 타이밍은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한 검찰 고위간부의 말처럼 “과거 어떤 총장이 예전 과오에 고개를 숙인 적이 있었냐”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피해자 가족의 손을 잡고, 또 잡으려 한 걸 두고 굳이 딴지 놓을 필요가 있냐는 지적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둘의 행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는 없다. “다 쇼야. 쇼.”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앞두고 벌이는 이벤트라는 의심, 과거사 정리라는 정권 코드에 발 맞추려는 몸부림이라는 추측 등이다. 어느 곳보다 차갑고 냉철해야 할 검찰과 경찰에게 과거 잘못을 사과하는 일종의 ‘따스한 인간미’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냉소적인 목소리도 있다.
그들 사과에 반성과 다짐이 담겨 있는지는 전적으로 내심의 영역이니, 실제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고운 놈은 무슨 잘못을 해도 용서해주고 싶고, 미운 놈은 어떤 짓을 해도 혼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한다는 말이 오히려 솔직하다. 그들의 사과에 검찰과 경찰이라는 조직 전체의 목소리가 녹아 있다고, 조직의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그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뿐이다.
요즘 사정기관이 과거를 정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애당초 수사라는 게 현재 일보단 과거 사건을 단죄하는 사후 조치가 대부분이라는 걸 감안해도, 그 정도가 통상적이지 않다. 당장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가 족히 10년은 된 일이며, 더욱이 예전에 처리했던 갖가지 미심쩍었던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구도 검경이 지금,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 박종철 열사와 같은, 백남기 농민과 같은 한 맺힌 피해자가 언제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결국 좀 더 지켜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사과를 하면서 ‘내 용서를 꼭 받아들여 줘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될 일, 기다림이 필수라고 했다. 두 수장의 이번 뒤늦은 사과 행보들이 느닷없는 한 번의 이벤트에 불과한 것인지, 기다려보자.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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