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훈령으로 월급제 도입
2007년 법적 강제력 없어 사문화
정부는 사업주 반대에 손놓아
“장시간 운전으로 승객 안전 위협
사납금 금지 법 개정 나서야”
“정부가 택시 사납금을 없애겠다고 법을 바꾼 지 벌써 21년인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해 9월 4일 새벽, 전주 시청 앞 조명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이어온 택시운전사 김재주(58)씨는 22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화를 억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승객 안전을 보장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손 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의 고공 농성은 이날로 꼭 200일째. 택시 노동자를 장시간 운전으로 내모는, 그래서 그들은 물론 승객의 목숨까지도 위협하는 택시 사납금 제도를 철폐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사납금 제도란 택시 노동자가 정해진 금액을 택시 법인에 내고 나머지 운행 수익을 본인이 가지는 방식이다. 지역이나 회사마다 금액은 다르지만 대략 하루 20만원 안팎인데 사납금을 먼저 채워야 택시 노동자는 본인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하루 10시간 이상, 많게는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근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만성적인 불친절, 그리고 승객의 안전에도 영향을 준다. 국토교통부와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전국 택시 중 법인 택시는 전 8만9,000여대로 개인택시(16만4,000여대)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법인택시가 1만5,690건(사망 139명)으로 개인택시(6,148건ㆍ사망 75명)보다 훨씬 심각하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가 사납금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여객자동차법을 개정, 택시 노동자는 모든 수익을 납부하고 사업주가 이를 관리하는 전액관리제를 1997년 도입했지만 사업주의 반발과 법률 미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개정안은 택시 노동자가 받은 운임 전부를 사업주에게 납부하도록 했고, 국토부는 훈령을 통해 사업주가 사납금 등을 받는 것을 금지했다. 사실상 월급제 도입을 의무화한 것이다. 하지만 택시업체를 실제 관리ㆍ감독하는 지자체들은 사업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도입을 미적댔다. 특히 대법원이 2007년 3월 국토부 훈령은 단순 사무 지침에 해당돼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거의 사문화됐다.
김씨가 근무하는 택시 회사를 관할하는 전주시 역시 노사정 대화를 통해 월급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지난 해 4월 이후 사업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김씨가 조명탑에 오른 이유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체 254개 택시 회사 중 전액관리제를 도입한 곳은 단 4곳. 이 4곳 역시 택시 노동자가 사납금과 다름없는 월 기준금을 채우지 못할 경우 월급에서 공제하는 ‘무늬만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질적인 전액관리제 도입을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현행법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류하경 변호사는 “사납금의 실질적 폐지와 월급제 도입을 위한 법률적 미비가 이미 오래 전에 드러났음에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과거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사납금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구성한 ‘뛰뛰빵빵 택시 희망버스’는 오는 31일 시민들과 함께 진주 시청 광장에서 문화제 등을 열어 김씨에게 힘을 보탤 예정이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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