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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성의 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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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남성의 죄의식

입력
2018.03.22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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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총기 규제 등에 대한 애매한 입장 때문에 “충분히 진보적이지 않다”는 불만을 산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는 “오바마가 ‘백인의 죄의식(white guilt)’에 기대 흑인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보수 진영이나 엘리트 백인층에서 오바마 지지가 상당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흑인에 대한 인종 편견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허위 의식이란 것이다.

▦ 며칠 전 영국 일간 가디언은 같은 메뉴를 흑인에게는 12달러, 백인에게는 30달러를 받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식당 얘기를 전했다. 음식 가격은 뉴올리언스의 흑백 소득 차를 정확히 감안한 것이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주인이 이런 ‘사회적 실험’을 한 건 심각한 흑백 양극화의 책임을 개인에게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흑백 프레임에서 악당이 될 수밖에 없는 백인에게는 “쉬운 탈출구”라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매우 불평등한 가격이지만 백인의 80%가 불만 없이 돈을 지불했다고 한다. 한 백인은 “‘백인의 죄의식’ 같은 걸 느꼈다. 달리 뭐 할 말이 있나”라고 했다.

▦ ‘백인의 죄의식’은 인종 차별에 대해 백인이 갖는 개인적ㆍ집단적 죄책감을 말한다. 이는 피해자에 대한 감정적 공감 같은 심리사회적 비용, 나아가 비(非) 백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죄의식이 인종 간 평등을 불러온다는 뜻은 아니다. 흑인 사회가 백인의 죄의식을 경계하는 것은 백인 지배 사회에 대한 흑인의 맹목적 충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 성향 칼럼니스트인 조지 윌은 “‘백인의 죄의식’은 인종주의와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온정적 행동을 하는 ‘자축’의 의미”라고 했다.

▦ 미투 운동이 남성이 함께 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백인의 죄의식처럼 위선적인 ‘남성의 죄의식’은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죄를 부인하는 안희정이나 정치적 공작, 음모론 운운하는 김어준을 보면 그렇다. 백인의 죄의식이 백인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돼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남성 우위의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는 남성의 죄의식은 의미가 없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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