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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은 선거 중] 중남미 대선 판도 풍향계... 우파ㆍ온건 좌파 초접전

입력
2018.03.22 18: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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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기로 우파 여당 후보 프리미엄

"독재 부역자의 아들" 낙인이 관건

좌파연대 후보는 대권 재수생

승리 땐 남미에 핑크타이드 부활

경제개방 등 공약 비슷... 이슈 적어

농축산물세 증세 정도가 쟁점

마리오 압도 베니테즈 파라과이 홍색당 대통령 후보. EPA 연합뉴스
마리오 압도 베니테즈 파라과이 홍색당 대통령 후보. EPA 연합뉴스

남미 대륙 정중앙에 위치한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는 남미 대국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인구 700만명이 안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4월22일 총선과 함께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는 베네수엘라(5월), 콜롬비아(5월), 멕시코(7월), 브라질(10월) 등 올해 줄줄이 치러지는 중남미 대선 레이스의 출발점이다. 2008년 대선 승리로 ‘60년 보수체제’를 종식시켰으나 2012년 탄핵으로 정권을 잃었던 파라과이 좌파 진영이 우파를 꺾을 경우 최근 주춤하고 있는 남미의 ‘핑크 타이드’(pink tide: 온건좌파정권 집권)를 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독재정권 부역자 2세 vs 변호사 출신 대권 재수생

오라시오 카르케스 현 대통령(홍색당ㆍ우파)과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프렌테 과수당ㆍ좌파)이 주도해 대통령의 연ㆍ중임을 가능하도록 한 개헌 시도가 지난해 4월 의회와 시민들의 저항으로 좌절되면서 큰 혼란이 발생했던 파라과이는 빠르게 정국을 수습하며 대선체제로 접어들었다. 현 대통령이 지원하는 산티아고 페냐 재무장관을 당내 경선에서 물리친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47)상원의원이 집권당인 홍색당 후보로 결정됐고, 야당에서는 제1야당인 청색당(자유당)의 에프라인 알레그레(55)대표가 좌파연대 추대 후보로 사실상 양자대결을 벌인다.

베니테스 후보는 파라과이 현대사를 지배한 우파 계급의 상징적 인물이다. 베니테스 후보의 아버지는 파라과이를 36년간 철권 통치했던 군부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1954~1989년 재임)의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2013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15년 상원의장 등을 거쳐, 본격적인 정계 입문 5년 만에 집권 여당 후보가 됐다. 가톨릭 신자로 사회적으로는 낙태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보수성향이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개방을 확대해, 내수 비중이 높은 파라과이 경제를 개방경제로 개혁하려는 자유시장주의자다.

치열했던 당내 경선 후유증으로 집권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리라는 우려,‘독재 부역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라과이가 최근 남미 국가 중 드물게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여당 프리미엄을 누릴 가능성도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파라과이 경제성장률을 4%로 전망하고 있다.

변호사이자 상원의원인 야당 알레그레 후보는 2013년 대선에서 39%를 득표, 카르케스 현 대통령(48%)에 패했으나 절치부심 끝에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 좌파정권인 루고 행정부에서 공보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지난 해 루고 전 대통령이 지지한 개헌(중임허용)에 반대하는 선봉에 서면서 오히려 당내 영향력을 키웠다.

좌파연대 후보이지만 치안문제 해결을 위한 경찰 증원을 주장하고, 개방경제를 지향해 성향상으로는 중도 우파에 가깝다. 다만 급진성향인 프렌테과수당 레오 루빈을 러닝메이트(부통령)삼아 기존의 좌파 표 결집을 노리고 있다. 정치적 카리스마가 부족하기 때문에 부동층 흡수에 불리하다는 우려도 나오지만 독재 부역자 가문 출신이라는 여당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파라과이판 역사 바로세우기’를 공약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냉전시기 대표적인 친미 반공을 표방했던 홍색당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납치ㆍ고문ㆍ살해 등 인권탄압을 자행했는데 집권기간 학살자만 12만8,000명(파라과이 진실과 정의 위원회)에 달했다. 하지만 현 우파정권은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부르기조차 주저하는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다. 알레그레 후보 측은 독재시기 인권탄압 문제를 미완의 과제로 간주하고 현대사 교육 의무화, 희생자와 유족 등에 대한 배상 강화 등을 주장하고 있다.

판세는 접전이다. 1월 19일 베니테스 후보(44.0%)가 알레그레 후보(33.5%)를 10%포인트 이상 앞섰으나 지난 12일 여론조사에서는 알레그레 후보(44.2%)가 베니테스 후보(42.2%)를 역전했다.

에프라인 알레그레 파라과이 청색당 대통령 후보 . 로이터 연합뉴스
에프라인 알레그레 파라과이 청색당 대통령 후보 . 로이터 연합뉴스

농축산물 증세 핵심 쟁점… 농지개혁 문제는 외면받을 듯

여야 후보 모두 국수주의적 태도를 지양하고, 파라과이를 개방경제로 전환시키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주요 공약이나 정책에 유사점이 많다. 현지 언론은 “파라과이 대선에 정책선거는 없다”고 표현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농축산물세 개혁’은 핵심 선거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파라과이는 대두(大豆)와 옥수수 생산 세계 6위, 동백기름 생산 세계 2위, 밀 생산 세계 10위, 소고기 생산 세계 8위 등 농축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다. 이들 농산물은 과거 부유층이 경영하는 기업형 대농장에서 생산되는데, 농축산물 판매 소득에는 세금이 거의 부과되지 않는다. 파라과이 중앙은행에 따르면 농ㆍ축산물 면세에 따른 재정부담이 파라과이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정부 재정은 적자(GDP 1.5% 적자ㆍ2017년)를 면치 못하고 있고, 외채는 지난 5년간 2배로 늘어났다.

소농ㆍ도시빈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좌파진영은 농축산물세 증세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알레그레 후보는 지난 1월 농축산업 분야에 대한 증세를 공약한 반면, 대농장주가 확고한 지지기반인 베니테스 후보는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일단 농축산물 분야 증세는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아순시온 카톨릭대 정치역사학과의 카를로스 고메즈 플로렌틴 교수는“향후 어떤 정부가 집권하든 균형재정을 위해서는 농수산물 분야의 증세는 불가피하다”면서 “알레그레 후보는 이미 증세를 공언했으며 베니테스 후보 역시 담배에 대한 증세를 공론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파라과이 사회의 핵심문제인 토지개혁 이슈는 이번 선거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은 집권기간 동안 원주민ㆍ소농ㆍ자작농들의 토지를 강탈해 많은 군인과 정치인들에게 불하했는데 그 결과 현재 인구 2.5% 부유층이 전 국토의 8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토지부당점유 문제가 심각해졌다. 토지를 빼앗긴 소농과 원주민들은 도시빈민이 되거나, 무장단체를 조직해 대농장주와 지주, 정치인에 대한 암살ㆍ납치를 시도하는 등 파라과이 치안을 위협하고 있다.

2008년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농지개혁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어 파라과이 현대사에서 최초로 민중진영을 대표해 당선됐던 루고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한 이유도 지주로 이뤄진 우파ㆍ중도세력이 의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좌파진영 부통령 후보 프렌테과수당 레오 루빈 만이 토지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구경모 부산외국어대 중남지역원 HK교수는 “루고 대통령 탄핵 이후 좌파진영이 인물난을 겪고 있고 파라과이 경제가 좋은 편이라 정권을 뒤엎을 만한 이슈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좌파 진영이 기적적으로 뒤집기에 성공한다면 중남미 좌파 진영이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베니테즈(오른쪽) 후보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지난 14일 아순시온에서 회동을 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순시온=로이터 연합뉴스
베니테즈(오른쪽) 후보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지난 14일 아순시온에서 회동을 한 뒤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순시온=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2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린 알레그레 후보 지지 집회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아순시온=AFP 연합뉴스
지난 12일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에서 열린 알레그레 후보 지지 집회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아순시온=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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