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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개인정보, 미 넘어 영ㆍ케냐 등서도 ‘선거 심리전’ 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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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개인정보, 미 넘어 영ㆍ케냐 등서도 ‘선거 심리전’ 악용

입력
2018.03.21 19:3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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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정보 악용한 英 데이터 기업

“케냐 대선캠프 사실상 우리가 운영”

페북 경영진 침묵… 논란 부채질

각국 정부기관, 페북 조사 돌입

美ㆍEU 의회, 저커버그 출석 요구

"우리 자료는 그의 것이 아니다. 곧장 감옥으로 가라." 20일 영국 런던 소재 데이터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사무실 앞에 알렉산더 닉스 최고경영자(CEO)를 비난하는 전단이 붙어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우리 자료는 그의 것이 아니다. 곧장 감옥으로 가라." 20일 영국 런던 소재 데이터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사무실 앞에 알렉산더 닉스 최고경영자(CEO)를 비난하는 전단이 붙어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우리가 사실상 캠프를 운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 브랜드를 두 번 바꿨고 당 강령도 다시 썼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의 개인정보를 대거 유출해 유권자 분석에 사용한 영국 소재 데이터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경영진 마크 턴불은 고객으로 위장한 영국 채널4방송 기자와의 대화에서 케냐 대선에 2차례 승리한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을 자신들의 ‘성공 사례’로 거론했다. 2016년 미국 대선뿐 아니라 다른 나라 선거에도 이 기업이 유출한 페이스북의 개인 정보가 선거전략 수립에 동원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첫 보도가 나온 이래 CA를 통한 페이스북 정보 유출 및 악용 스캔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일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CA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캠프 외에 전세계적으로 다수 고객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케냐타 대통령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 진영,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 인도 집권 인민당(BJP) 등이 CA로부터 서비스를 제공 받았다. 호주, 말레이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지에도 CA의 해외지부가 설립돼 잠재적인 ‘고객’들과 접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4분기 기준으로 전세계 활동 회원 수가 22억명에 이르는 초거대 소셜미디어 내 개인 정보가 무차별 유출돼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인 ‘조작’에 활용됐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지난 17일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CA는 데이터 과학자인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개발한 페이스북 내부 애플리케이션 ‘디스이즈유어디지털라이프’를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 앱을 사용한 페이스북 회원들은 학술적 목적에 의한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하며 설문에 응했다. 그러나 이 앱은 실제로는 정보 제공에 동의한 회원 본인 뿐 아니라 그 페이스북 친구들의 정보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정보의 규모를 불린 것으로 드러났다.

CA는 이렇게 수집한 개인 정보를 분석, 소위 ‘사기꾼 힐러리’라 불리는 트럼프 선거 캠프 전략 수립에 활용했다. CA라는 기업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 중 하나인 헤지펀드 억만장자 로버트 머서의 소유였고,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프 전략을 꾸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대표를 맡기도 했다. 보도가 나온 이후 페이스북은 코건 교수와 CA가 수집한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규약을 어겼다며 이들의 계정을 중단시켰다. 또 “2016년에 데이터 유출을 인지한 후 코건 교수에게 데이터 삭제를 요청했고 실제로 삭제된 것으로 알았다”라며 책임을 CA 쪽으로 돌렸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하지만 비록 ‘정보 유출’의 주체가 CA라 하더라도 페이스북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앱 개발자들의 데이터 유출 문제를 담당했던 샌디 패러킬러스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 서버를 떠난 개인 정보 자료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음에도 수뇌부는 유출을 방지하는 데 무관심했다”고 주장했다. 코건 교수는 20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나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라며 “수많은 개발자와 데이터 과학자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파문이 커지자 각국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2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 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페이스북이 2011년 11월 제정한 소비자 정보 보호 규약을 어겼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캐나다 정부 사생활정보 보호 감독 기관인 캐나다 프라이버시위원회 역시 독자 조사에 나섰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과 영국 하원 매체위원회, 유럽연합(EU) 의회 의원들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등의 의회 출석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에 ‘페이스북을 삭제하자(#DeleteFacebook)’ 해시태그가 유행하는 등 페이스북에 부정적인 여론도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계속되는 혼란에도 저커버그를 비롯한 페이스북 경영진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논란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심지어 내부 균열 조짐마저 보인다. 19일 미국 언론은 그간 ‘가짜 뉴스’ 문제에 대응해 “투명한 정보 공개”를 주장한 알렉스 스타모스 최고보안책임자가 이견 때문에 올해 중으로 페이스북을 떠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은 2016년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사실상 ‘가짜 뉴스’ 확산을 부추기고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트롤 부대’의 활동을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은 IT기업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BBC방송은 “막대한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성장해 온 IT기업들의 자율규제 시대가 끝날 수 있다”고 논평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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