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걸그룹 '레드벨벳'일까? 오는 31일부터 4월3일까지 북한 평양 내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2회 공연하는 남한예술단 총 9팀에 레드벨벳이 포함되자, 상당수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레드벨벳은 이번에 평양에서 공연하는 유일한 K팝 아이돌 그룹이다. '소녀시대' 멤버 서현도 포함되긴 했다. 하지만 팀 멤버들 중 홀로 참가하는데다, 지난달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서울 국립극장에서 함께 한 인연으로 화답의 성격이 짙다.
북한서 K팝 물꼬 신호탄?
2010년대 초반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K팝 열풍은 폐쇄적인 북한마저 비껴가지 못했다. 당시 소녀시대와 '빅뱅'의 노래와 춤이 유행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방송이 담긴 DVD 등이 중국을 통해 북한에 유통되면서 한류가 확산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부 부유층 사이에서는 K팝 아이돌 춤을 배운다는 설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당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평안북도가 자본주의의 날라리판이 됐다"며 K팝을 비롯한 남한 풍의 자본주의 문화 유입을 차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김정은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송월 단장이 이끈 모란봉악단이 전자음악을 도입하는 등 좀 더 개방적이 됐지만 여전히 최신 K팝과 한국 드라마는 음성적으로 유통됐다.
지난 2월4일 북한이 금강산에서 남북 합동으로 개최하기로 했던 문화공연 행사를 돌연 취소했을 당시, 아이돌 K팝이 중심이 돼 무산됐다는 분석도 있었다. K팝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북한 병사들을 자극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레드벨벳의 출연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레드벨벳은 소녀시대, 최근 아시아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걸그룹 '트와이스'에 비해 중장년층 사이에서 인지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이들은 1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동시에 차세대 K팝 걸그룹을 대표하는 팀으로 통한다. 특히 개성 강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댄스, R&B를 오가는 팀 콘셉트도 매력적이다.
북한 젊은 층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훈련에서 한 북한선수가 레드벨벳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란 노래를 흥얼거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시에 남한에서는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라커룸에서 자주 흘러나왔던 것으로 알려진 '방탄소년단',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무대에 오른 '엑소' 등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보이그룹이 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 두 팀 등 K팝 보이그룹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예측했다. 보이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보이그룹의 화려한 칼군무와 음악이 북한 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안길 수 있어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영상을 통해 접했더라도, 실제 봤을 때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건 다르다"고 했다. 이어 "현송월 단장이 중심이 돼 논의를 한 만큼 레드벨벳을 비롯해 여성 가수들이 도드라지는 느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4월에 방탄소년단이 일본 활동에 주력하고 엑소가 멤버별로 빠듯한 스케줄이 잡혀 있어 일정 조율이 힘들었을 거라는 일부 의견도 있다.
과거 이미 평양 무대에 아이돌이 섰다. 1999년 12월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에 '젝스키스'와 '핑클', 2003년 평양에서 열린 '류경 정주영 체육관 개관기념 통일음악회'에 '신화'와 '베이비복스'가 출연했다.
당시 핑클은 발라드 '나의 왕자님께', 댄스그룹인 젝스키스 역시 비교적 차분한 '예감'을 불렀다. 신화와 베이비복스는 보다 강렬한 '퍼펙트 맨'과 '우연'을 각각 불렀지만 남한 무대에 비해 차분한 정서를 유지했다.
중장년이 보기에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콘셉트를 선보이는 레드벨벳은 춤뿐만 아니라 가창력도 갖추고 있어 차분한 곡도 소화 가능하다. 레드벨벳의 공연으로 현지에서 K팝 공연의 물꼬가 터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함께 레드벨벳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의 흥을 돋우는 배경음악으로 선곡됐던 대표곡 '빨간 맛' 등을 부를지 관심사다. 화려한 구성의 곡으로 선보였을 경우, 업계에서 현지 반응을 가장 궁금해하는 곡이다.
강수지, 러블리즈 등 여자가수 프로듀싱에 일가견이 있다는 평을 듣는 이번 남한예술단의 음악감독 윤상의 곡 중 비교적 차분한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경우의 수도 고려된다. 윤상은 과거 레드벨벳이 속한 SM과 작업했고 이 회사에 속한 SES가 그의 히트곡 '달리기'를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조용필·최진희, 히트곡 다시 부를까
공연 직전까지 조율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선곡을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하지만 과거 평양에서 공연한 가수들은 당시 불렀던 곡으로 세트리스트를 예상해볼 수 있다. 아울러 삼지연관현악단이 지난달 방남해 강릉아트센터와 국립극장 공연에서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선희의 'J에게'를 부른 것도 감안할 수 있다.
총 2번의 공연 중 첫 번째 공연은 남한 가수 위주로, 두 번째 공연은 일부 북한 예술가들과 합동 공연 형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 가수 위주의 공연은 9팀이 참여하므로 각팀당 2~3곡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단독 공연을 열었을 당시 암표가 나돌았다고 알려진 조용필이 우선 가장 큰 관심을 모은다.
그는 지난 2005년 8월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 '조용필 평양 2005'를 열어 객석을 꽉 채웠다. 당시 '못찾겠다 꾀꼬리' '친구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허공' 등 히트곡을 쏟아냈다. 당시 이 콘서트의 마지막에서 울려 퍼진 '홀로 아리랑'을 북한 관객 대다수가 따라 부른 일화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번 공연으로 세 번째 평양에서 공연하게 된 최진희는 북한에서 국빈급의 대접을 받는 인기 가수다. 그녀는 1999년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평화친선음악회', 2002년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MBC 평양 특별공연'에 출연했다. 최진희는 북한의 음악교과서에도 수록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랑의 미로'를 부를 것으로 확실시 된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최진희는 'MBC 평양 특별공연'에서 이 곡을 불렀었다.
지난 2003년 평양에서 진행된 SBS 통일 음악회 무대에서 '아름다운 강산', 'J에게' 등을 불러 호응을 얻은 이선희도 비슷한 선곡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윤도현밴드로 활약하던 당시인 2002년 'MBC 평양 특별공연'을 통해 평양에서 공연을 한 'YB'는 북한에서 부를 한곡을 미리 공개했다. 윤도현은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동안 만든 YB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곡 중에서 이번엔 '1178'을 연주할 예정"이라고 썼다. '1178'은 한반도 최남단에서 최북단까지의 거리인 1178㎞를 뜻한다.
이번에 처음 평양에서 공연하는 '디바 3인방' 백지영·정인·알리는 남북합동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국내에서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가수들이다. 특히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발라드와 R&B 등 감수성 어린 곡들을 소화할 수 있어 북한의 오케스트라와 효과적인 협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알리 소속사 쥬스엔터테인먼트의 박정수 대표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북한 측과 협연이 가능한 곡을 선곡하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현송월단장이 이끈 삼지연관현악단의 지난달 서울 국립극장 공연에서 깜짝 등장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부른 서현은 이번에도 북한 예술단과 협업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번에 남한예술단이 어떤 형태로 노래를 부를 지 관심을 끈다.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인 '위대한 탄생'과 함께 하고 YB는 팀이 밴드 자체다. 이번에 예술단 규모가 스태프 포함 160명이 되는 만큼, 한국에서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다른 가수들은 현지 오케스트라와 협업하는 방안이 점쳐진다. 또한 레드벨벳은 자신의 노래를 부를 경우 반주음악(MR)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상 음악감독은 "첫날은 우리측 공연으로만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공연은 아무래도 북측과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이 이뤄지다 보니까 아티스트들의 편의를 정말 많이 살펴서 진행해야 될 부분"이라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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