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기량을 닦은 운동 선수들이 국가 권력에 의해 출전 기회를 잃은 예는 사실 드물지 않다. 세계대전으로 대회 자체가 취소된 극단적 경우도 있었고, 미국을 주축으로 서방 64개국이 출전을 거부한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처럼 사실상 반쪽 올림픽도 있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을 놓침으로써 전성기의 기량을 선뵈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선수들도 무척 많았을 것이다.
발단은 1979년 12월 발발한 소련ㆍ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 소련은 반군 무자헤딘의 무력저항을 꺾고 친소 정권을 지키기 위해 정규군을 아프간 국경 너머로 투입했고, 무자헤딘의 배후였던 미국 등 서방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사실상 침략전쟁이라며 반발했다. 사실은 앞서부터 미소의, 사실상의 대리전이었다. 전황이 격화하자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80년 3월 21일 모스크바 여름올림픽 출전 거부를 선언했고 서방 국가에 외교력(사실상 압력)을 발휘해 출전 보이콧을 선동했다. 서독 등 유럽 여러 나라와 이란 이집트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들이 보이콧 행렬에 동참했고, 한국과 일본도 출전을 거부했다. 국경분쟁으로 소련과 사이가 벌어진 중국 역시 동조했다.
도핑 스캔들 여파로 2018 동계 올림픽에 러시아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것처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13개국은 자국기가 아닌 올림픽기를 들고 참가했다.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국은 총 80개국(5,179명), 4년 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의 92개국(6,028명)보다 적었다. 사실 몬트리올 올림픽도 올림픽 위원회가 아파르트헤이트의 남아공과 친선 럭비경기를 벌인 뉴질랜드의 참가를 허용한 데 반발해 아프리카 28개국이 불참한 대회였다.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소련은 80개의 금메달(총 195개 메달)을 싹쓸이하며 2위 동독(금 47개, 총 126개)을 압도했다. 대회 폐막식에는 차기 개최국인 미국 국기가 아닌 개최도시 로스앤젤레스 시기가 게양됐고,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됐다.
뒤이은 84년 LA 올림픽에는 소련과 동독 등 동구 15개국이 불참했다. 동서화합의 올림픽을 꼽히는 88년 서울올림픽에는 미국과 소련, 동ㆍ서독을 포함 160개국이 참가했다. 그 무렵은 아프간 전쟁도 끝물(89년 2월 휴전)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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