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망상에 자업자득 비난 우려
아무에게도 고민 말 못해 속앓이
전문가 “우울증 모르는 경우 많아
가족에게는 적극 어려움 알려야”
“비트코인 때문에 처음으로 부부싸움까지 했어요.”
대기업 회사원 김모(28)씨는 지난달 가상화폐에서 손을 뗐다. 은행 대출금에다 그간 모아뒀던 전 재산을 더해 1억원 가량을 투자했다가 두 달 만에 3,000만원을 잃고 난 뒤다. 투자한 화폐 가치가 바닥으로 치달으면서는 금슬에 금이 갔다. 처음 투자할 때는 ‘큰 돈 벌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한마음이 됐는데 화폐를 언제 팔아야 되는지를 두고 이견이 생기면서 결혼 1년 만에 언성도 높아졌다. 김씨는 “투자를 시작한 뒤로는 매일 밤 잠도 제대로 못 잤다”라며 “가상화폐로 돈을 날렸다고 하면 욕만 먹을까 봐 부모에게도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급등락을 반복하는 가상화폐 때문에 2030 투자자들이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다.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많은 청년이 뛰어들지만, 결국 남는 건 수천 만원에 달하는 빚과 망가진 몸뿐이라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극도의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지만,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자업자득이라는 시선에 쉽게 고민을 꺼내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할 뿐이다.
실제로 이들 중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최근 며칠간 기자가 찾은 수많은 상담센터에서는 가상화폐 투자로 인해 상담을 요청한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는 가상화폐를 팔지 않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상담사들은 얘기한다. 지난해 5월부터 가상화폐에 투자해 2,000만원을 손해 봤다는 엔지니어 손모(29)씨는 “작년 여름에 큰 손해를 입고 빚까지 냈지만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오를 때까지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가상화폐 투자자 속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생활에 바쁜 사회 초년생에게 심리상담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사람도 있다.
기성세대의 부정적인 눈초리는 이들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주부 유모(54)씨는 “투자라고 하지만 실제론 투기”라며 “아들 딸에게 가상화폐에 돈을 절대로 넣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해 10월 전국 40, 50대 500명에게 실시한 조사에서도 절반 이상(40대의 52.4%, 50대의 54.4%)이 가상화폐 가치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인식이 만연하다 보니 자녀인 2030 투자자들은 자칫 투기꾼으로 몰릴까 싶어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투자 사실을 말할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서둘러 자신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고, 가족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말해야 우울증 같은 시한폭탄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조언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기회 아니면 흙수저 탈출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상화폐 투자에 중독되는 2030세대가 많다”라며 “대부분은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이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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