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청구 사유론 이례적
“발뺌에 죄질 불량해 추가” 해석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로 ‘도망의 우려’를 적시했다. 현직에 버금가는 예우를 받으며 일거수일투족이 시민들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전직 대통령에게, 검찰이 달아날 우려가 있다고 본 건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19일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이 전 대통령 영장에 ▦범죄 혐의의 소명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 우려 ▦도망의 우려 등 4가지를 구속 필요 사유로 제시했다. 검찰은 “뇌물 수수죄만 봐도 형량이 무기 또는 11년 이상 징역에 해당한다. 형사책임을 면하기 위해 장기간 도망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장 청구 전 상당수 법조계 전문가들은 검찰이 범죄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우려만으로 구속 필요성을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의 경호ㆍ경비를 받고 있어 도주가 쉽지 않고, 얼굴이 전국민에게 알려져 있어 도피 역시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전직 대통령 구속영장에도 도망 우려라는 직접적 표현은 드물었다. 1995년 11월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는 증거인멸 우려만 적시됐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영장에는 제목에 ‘도주 우려’라는 단어가 있긴 했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직접적 도망이 아니라 수사 및 재판 출석 거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다만 95년 12월 검찰 소환을 거부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버린 전두환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자’라는 표현이 적시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등 객관적 자료까지 모른다고 발뺌하는 등 죄질이 불량한 것으로 보고 도망 우려를 추가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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