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된 표현을 주로 쓰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관련 부처 장관들에게 강한 질책을 한 적이 있다. 두 달쯤 전 1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 점검회의 자리였다.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 것이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각 부처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그런 고정관념이 청년 일자리 대책을 더 과감하게 구상하고 추진하는 것을 가로막는 게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서 베이비부머의 자식세대인 에코붐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이 대폭 늘어나는 향후 3, 4년간 한시적으로라도 특단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만난 한 전직 정부 고위관료는 딱 한 마디로 예견했다. “추경이겠네요.”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으니, 그것도 민간과 시장에 맡기지 말라고 주문했으니 추가경정예산(추경) 외에 뾰족한 수가 없을 거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에 찬 예측이었다. 흔히 말하듯 올해 본예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이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부는 지난 주 청년일자리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스스로 “파격”이라는 자찬을 내놓으며 돈으로 할 수 있는 대책들을 망라했다. 여기에 필요한 돈 4조원을 추경으로 편성해달라고 국회에 청구서를 곧 내밀 것이다.
엄격한 추경의 요건을 염두에 둔 것이겠지만, “국가 재난 수준”이라는 문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틀리지 않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9%로 두 자릿수 턱밑에 있고, 지난달 일자리 수 증가 폭은 10만명에 겨우 턱걸이를 했다. 에코붐 세대 때문에 향후 3, 4년간 취업시장에 쏟아져 나올 인력은 더 늘어날 거라고 하니 분명 재난은 재난이다.
그런데 재난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는다. 청년 실업 문제가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님은 이 땅의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절절하게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통계를 봐도 그렇다. 가장 최근 수치인 2월 청년실업률만 놓고 봐도, 작년(12.3%)과 재작년(12.5%)이 올해(9.8%)보다 훨씬 높았다. 마치 갑작스런 지진이 닥친 것처럼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지난한 과제에 대해 두 달 만에 뚝딱 대책이 마련되길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제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진 관료들이 총동원된다 해도 돈을 왕창 쓰는 것 외에는, 또 서랍 속 대책을 이리저리 달리 포장하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렵다. 그러니 내놓은 대책은 온통 기존의 금전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뿐이다.
추경만이 답인지 묻자 이번 대책 마련에 참여한 정부 고위 인사는 “저축은 왜 합니까. 필요할 때 쓰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반박할 생각은 없다. 가정에서도 저축만이 답이 아니라 소비와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듯, 정부도 적기의 지출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가성비다. 3년간 연 1,000만원 이상 쥐어주며 별로 내키지 않는 기업에 떠민다 한들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만들어질 리 만무하다. 3년 뒤에는 이들 상당수가 회사를 등지면서, 그렇게 투입된 4조원은 자취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역대 정부가 출산대책에 10년간 80조원을 퍼붓고도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로 추락한 것도, 서울시가 미세먼지가 심한 날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폈다가 하루에 50억원씩 사흘간 150억원을 날린 채 접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이 돈만으로는 안 되는 것들을,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니 생기는 일이다.
돈을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추경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물며 가계에서 몇 만원을 쓸 때도 가성비를 꼼꼼히 따지는 마당에, 정부가 수조원,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쓰는 대책을 내놓을 때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건 야당과의 공방 대상이기에 앞서 국민을 이해시켜야 할 문제다.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내 세금의 가성비가 도대체 얼마인지.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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