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속, 혹은 그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차량이 있다면 아무래도 캐딜락의 아이코닉 SUV, 플래그십 SUV 에스컬레이드를 떠올리게 된다. 육중한 체격과 강렬한 디자인 그리고 캐딜락이라는 그 특유의 존재감 등은 단 한 번의 등장으로도 뇌리 속에 각인될 정도다.
이러한 존재감, 특별함 때문일까?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캐딜락이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시절에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만큼은 남들의 이목을 끌었고,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2,000대 판매고를 달성한 캐딜락에게도 에스컬레이드는 여전히 큰 존재로 남아있다.
압도적 존재감의 상징
대형 SUV를 표현할 때 ‘압도적인 존재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레인지로버가 그렇고 지프의 차량들이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 개인적으로는 그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차량이 바로 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라 생각한다.
압도적인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캐딜락 고유의 강렬한 존재감, 그리고 그 크기를 그대로 옮기고 고급스러운 소재 및 구성을 적용한 실내 공간은 이를 잘 설명한다. 그리고 다른 경쟁 SUV들을 비웃으며 마치 ‘미국의 혈통’임을 과시하는 V8 엔진의 탑재 역시 그 맥을 함께 하는 것이다.
월계수를 버린 캐딜락, 조금 더 진보하다
솔직히 말해 캐딜락이 엠블럼에서 월계수를 뺀다고 했을 때 과거의 영광과 전통을 버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과연 월계수가 없는 캐딜락이 캐딜락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드를 비롯해 새로운 엠블럼을 적용한 캐딜락들은 ‘과거에 미련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라며 ‘앞으로 한 발 나선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에스컬레이드 특유의 높은 보닛 라인과 전면부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프론트 그릴에 자리한 캐딜락 엠블럼은 그렇게 뻔뻔해 보였다.
캐딜락 본연의 가치를 담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말 그대로 거대하다. 대형 세단들을 중형 세단처럼로 보이게 만드는 5,180mm의 긴 전장과 2,045mm의 전폭을 갖췄고, 그 아래 캐딜락 고유의 감성을 그 어떤 캐딜락보다 강력하고 명확하게 강조한다. 참고로 전고 역시 1,900mm로 키가 큰 사람들에게도 높은 벽처럼 느껴진다.
특히 굵은 크롬 라인으로 구현된 프론트 그릴과 대형의 캐딜락 엠블럼, 그리고 LED 램프가 더해진 폭포수 헤드라이트까지 더해졌다. 측면에는 직선 중심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2,946mm에 이르는 긴 휠베이스와 기교는 줄이고 담백한 직선으로만 구성되어 더욱 큰 존재를 느끼게 된다.
후면 디자인도 통일된 감성이 돋보인다. 트렁크 게이트는 넓은 면적과 함께 큼직한 캐딜락 엠블럼으로 다시 한번 차량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모습이며 후방의 운전자에게 명료한 시인성을 전하는 광선검 형태의 라이트 블레이드 테일 램프를 통해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편 차량 곳곳에 크롬 가니시를 더하고 22인치 크기의 대형 알로이 휠로 시각적인 매력에 일조한다.
아메리칸 스탠다드, V8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의 가장 큰 가치는 단연 V8 엔진에 있다. 육중한 보닛 아래에는 에코텍3 V8 플렉스퓨얼로 명명된 새로운 V8 6.2L 엔진이 자리하는데 이 엔진은 최고 출력 426마력과 62.2kg.m의 토크를 낸다.
수치적으로만 본다면 두 개의 과급기를 얹은 3.0L 급 혹은 그 이상의 엔진들이 내는 출력을 여덟 개의 실런더에서 발산하는 것이다. 최근 유행이라 할 수 있는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이 아닌 V8 엔진으로 아메리칸 프리미엄의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이다. 시대의 트렌드가 다운사이징이라고 하지만 영화 매드맥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V8’을 외치고 싶은 부분이다.
한편 이 엔진에 8단 자동 변속기를 적용하고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최적의 주행 성능을 내는 4륜 구동 시스템을 채택했다. 국내 복합 연비 기준으로 6.9km/L의 복합 연비를 인증 받았으며 도심과 고속도로에서는 각각 6.0km/L와 8.5km/L의 연비를 갖췄다.
도로를 달리는 중전차
V8 엔진의 힘은 그대로 드러난다. 차량의 무게가 2톤 중반을 손쉽게 넘기는 2,650kg에도 불구하고 엑셀레이터 페달의 조작에 거침 없는 움직임을 과시한다. 흔히 자연흡기 엔진이 낮은 RPM에서 힘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이 V8의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V8 엔진 특유의 사운드가 실내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거대한 검은색의 중전차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발진은 조금 둔하게 느낄지 몰라고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육중한 차체는 마치 탄력을 얻은 듯 경쾌하게 발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무게와 속도를 더해간다.
풍부한 출력과 함께 인상적인 건 역시 V8 엔진의 사운드다. RPM이 상승할수록 청각을 자극하는 V8 엔진의 사운드는 계속해서 엑셀레이터 페달을 밟고 싶게 하는 조미료가 되어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한편 속도가 붙은 에스컬레이드를 제어하는 브레이크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을 능숙히 조율하는 변속기 역시 만족스럽다.
다만 스티어링 휠 칼럼 뒤에 자리하는 특유의 구성은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막상 이렇게 강렬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는 중저음의 사운드를 내며 부드럽고 편안한 감성을 추구하는 독특함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차량의 움직임은 운전자와 운전자가 아닌 사람에게 다르게 전해진다. 기자는 처음에는 조수석에 앉아 에스컬레이드의 움직임을 경험했는데 생각보다 노면의 충격을 능숙하게 거르면서 고급스러운 감성을 강조하는데 집중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운전석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잡으니 완전히 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육중하지만 견고하게 다듬어진 차체는 일체된 감성으로 운전자에게 자신감을 더하지만 조수석에서 보다 더 많은 노면 충격, 정보 등이 손과 발 등으로 전하면서 운전자가 ‘스스로 충분히 큰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킨다. 참고로 이 차량에는 캐딜락의 자랑 중 하나인 MRC가 탑재되어있다. 이건 정말 중요한 강점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육중함 이면에는 생각보다 효율성이 괜찮다는 평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미 일전에 진행했던 시승에서는 550.4km의 거리를 달리며 공인 연비보다 높은 8.9km/L의 기록을 확인했었으며 자유로에서 50km의 거리를 90km/h의 속도로 달릴 때에는 13.2km/L의 효율성을 확인할 수 있던 것이다.
또한 주변의 한 에스컬레이드 오너 역시 ‘평소에는 8km/L 정도’의 효율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존재
흔히 미국차를 가리켜 실내의 마감이나 품질 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속에서 늘 잊는 게 있다면 바로 경쟁 모델과의 시장 판매 가격의 차이를 비롯한 구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그들이 얻지 못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고급스러운 SUV의 공간을 드러내다
에스컬레이드의 실내 공간은 압도적으로 크고 여유로운 존재감을 과시한다. 최신의 캐딜락 인테리어 기조는 아니지만, ATS와 CTS와 함께 호평을 받았던 ‘듀얼콕핏’ 구성의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듀얼콕핏 특유의, ‘뻗어 나가는 듯한’ 균형감이 돋보이는 실내 공간은 우아하면서도 과감한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를 통해 운전자를 비롯해 탑승자에게 시각을 비롯한 다양한 감성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스티어링휠과 계기판 역시 최신의 스타일링은 아니지만 우수한 시인성과 고급스러운 감성, 그리고 플래그십 모델의 선 굵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실내 공간 역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웅대하고 매력적인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1열과 2열, 그리고3열까지 외형에서 보았던 그 공간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넉넉한 크기의 시트로 여유로운 착좌감을 제시하며 헤드룸과 레그룸 모두 여유로워 누구라도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실내 곳곳에 캐딜락의 감성이 드러나는 V 실루엣이 더해진 것 또한 인상적이다.
참고로 천장에 배치된 디스플레이 패널을 통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며 보스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통해 보다 풍부한 음향 경험을 보장한다.
에스컬레이드는 세 열의 시트를 모두 사용할 때에도 430L의 적재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2열 시트 및 3열 시트를 폴딩할 수 있다. 특히 3열 시트는 트렁크에서 버튼을 눌러 조작할 수 있는데 2열과 3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최대 1,461L의 적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데 체격에 비해 부족한 수치라고 해도 눈에 들어오는 넓은 공간은 외면하기 어렵다.
좋은점: 강렬한 디자인, 넓은 공간, 매력적인 V8 엔진 그리고 MRC
안좋은점: 시장에서의 부족한 인지도, 조금은 아쉬운 마감 품질
따로 이유가 필요 없는 존재, 에스컬레이드
캐딜락의 차량을 설명할 때, 때로는 경쟁차와의 비교나 경쟁차를 거론하며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에게는 그런 부연은 구차하게 느껴진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이 단점이 없는 차량은 아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드는 에스컬레이드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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