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 되찾자 칼 내놓지 않겠다는 검찰총장
檢 조직이기주의에 밀려 또 개혁 좌초 우려
문 대통령, 검찰개혁 못하면 역사적 책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검찰의 ‘적폐 청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1년여 간의 대장정에서 검찰은 상당한 성과를 낸 게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 둘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고 50여명을 구속시킨 게 이를 말해준다.
이런 놀라운 전과는 물론 ‘거악 척결’에 대한 촛불 시민들의 요구와 수사팀의 의지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적폐 수사를 지렛대 삼아 조직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검찰의 의도도 깔려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적폐 수사에서 성과를 내면 ‘촛불 적폐 1호’로 지목된 검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물줄기를 돌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당초 적폐 청산 수사를 검찰에 맡길 때 제기됐던 우려가 ‘검찰 회생론’이었다. 검찰에 칼을 쥐어주면 검찰개혁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주장이었다. 기력을 되찾은 검찰이 순순히 칼을 내놓을 리 없다는 주장은 충분히 수긍할 만했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 청와대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수사가 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예상대로 검찰개혁 목소리는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수사가 일단락되자 우려는 현실이 됐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13일 국회에 나와 그간의 적폐 수사에 대한 ‘청구서’를 내밀었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과 수사권 조정 등 기득권을 내려놓을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비싼 값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아마 문 총장은 2003년의 검찰 위기탈출 상황을 떠올리는 듯싶다.
2002년 대선을 전후로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첫해 검찰개혁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마침 대선 불법자금 사건이 터졌고 검찰은 여야를 가리지 않은 수사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자 개혁 대상이었던 검찰은 “무리한 검찰개혁을 꼭 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을 업고 반발했고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은 흐지부지됐다.
청와대 상황도 비슷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일체 개입하지 말라”며 고삐를 내려놨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청와대는 “검찰에 대한 수사지휘를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번에 문 총장이 검찰개혁에 사실상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왔는데도 “의견을 조정해 가는 중”이라며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다시 검찰개혁이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에 밀려 좌초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검찰이 행여 개혁의 물결을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 대다수는 검찰의 적폐 수사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검찰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적폐 청산 수사만 해도 그렇다. 이 전 대통령의 비리 혐의 상당수는 검찰이 제 역할을 했다면 진작에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이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은 과거 검찰과 특검이 네 차례나 수사해 놓고도 면죄부를 줬다.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검찰은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한 이런 악습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정치권력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검찰도 권력화의 유혹을 느끼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필연적인 것이다. 지금은 정치권력과 절연한 듯 보이지만 언제 ‘권력의 충견’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적폐 수사 뒤 검찰의 칼을 거둬들이겠다는 생각부터가 순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개혁이 실패한 뒤 “검찰의 정치적 중립만 보장해 주면 스스로 개혁을 잘 해낼 것으로 믿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청와대는 검찰개혁의 책임을 국회에만 떠넘길 게 아니다. 제도적 개혁은 국회 입법사항이지만 검찰이 얼마나 개혁에 순응하느냐는 일차적으로 청와대에 달려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때 검찰개혁의 실패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검찰개혁에 실패한다면 역사적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개혁과제가 검찰개혁임을 벌써 잊었는가.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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