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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즐기는 뇌… 게임 없이는 못 견디는 뇌,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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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즐기는 뇌… 게임 없이는 못 견디는 뇌, 무엇이 다른가

입력
2018.03.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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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진 청소년.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임에 빠진 청소년.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게임업계는 ‘공포의 5월’을 앞두고 떨고 있다. 오는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새로운 질병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WHO가 정의한 게임장애는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순위에 두고, 생활에서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 행위의 패턴’이다. 한마디로 게임중독을 말한다.

하지만 ‘게임중독을 정식 질환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전문가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반대 측은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고 중독으로 인정할 만한 내성이나 금단증상이 규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뇌 기능들을 활성화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중독의 위험성은 마약과 같다는 연구도 있다. ‘게임을 즐기는 뇌’와 ‘게임 없이는 견디지 못하는 뇌’. 그 차이는 무엇일까.

2000년 네덜란드에서는 1인칭 슈팅 게임이 ‘뇌의 인지 유연성’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됐다. 연구진들은 피실험자들을 각 17명씩 두 집단으로 나눴다. 한 집단은 3차원(3D) 환경에서 캐릭터를 자유롭게 조작하며 목표물을 맞히는 1인칭 슈팅 게임을 6개월 동안 일주일에 4회 이상 즐긴 사람들이고, 다른 쪽은 게임을 하지 않은 집단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화면에 표시되는 지시에 따라 알맞은 키보드 자판을 정확하고 빠르게 누르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지시의 성격이 달라졌을 때 새로운 환경에 바꿔 반응하는 속도가 게이머 집단이 확연히 빨랐다. 연구진들은 “게이머들은 바뀌는 상황에 대한 저항감이 적고, 인지 유연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캐릭터가 이미 통과한 곳은 빨리 잊고, 눈앞의 자극에 신속히 반응해야 하는 게임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 논문에 관해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나간 기억을 툴툴 터는 연습을 한 사람은 전두엽의 ‘신경망일치율’이 향상돼 과거 기억의 흔적들이 자동으로 회상되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며 “새로운 걸 시작할 때 그 전에 했던 것들이 원하지 않아도 떠오른다면, 변화에 적응하는데 방해가 되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과거 기억을 지워버리는 훈련을 통해 변화에 더 쉽고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독일에선 슈퍼마리오 게임을 하는 뇌를 들여다봤다. 여기서 말하는 슈퍼마리오는 닌텐도 게임인데, 위쪽 화면에서 슈퍼마리오를 뒤에서 계속 쫓아가며, 동시에 아래 화면에 표시되는 지도 속 캐릭터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두 달 동안 이 게임을 매일 30분 한 피실험자들의 뇌를 보니 우측 해마와 우측 배외측전전두피질, 소뇌 기능이 강화됐다. 목표물을 찾아 캐릭터 움직임의 방향을 결정하면서 공간 지각력을 담당하는 우측 해마가 강화되고, 목표를 향하면서도 중간에 등장하는 적을 물리칠지 피할지 판단하며 정보 통합 및 균형을 담당하는 배외측전전두피질과 소뇌 기능이 발달했다는 결과였다.

우리는 종종 게임에 열중할 때 가끔 누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있다. ‘몰입’이다. 게임에 몰입할 때 뇌는 뭘 하고 있을까. 미국 심리연구네트워크 연구진이 고전 게임의 대명사 테트리스에 몰입한 10대 청소년 26명의 뇌를 살펴보니, 배외측 전전두엽과 북외측 전전두엽, 전두엽극점부위의 활동도가 증가한 것이 관찰됐다. 하 교수는 이 실험을 두고 “목표를 이루고 보상받는 게임을 적절한 정도로 즐긴다면, 남보다 깊이 열중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며 “이런 몰입을 경험한 사람은 변화를 끌어내는 힘과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2015년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의 논문이 화제가 됐다. 강 교수는 스타크래프트 등 실시간전략게임(RTS)을 1,000회 이상 해본 사람들을 모아 3개월 동안 주 4시간 이상 RTS를 하게 했다. 이후 이 그룹과 최근 1년간 어떤 종류의 게임도 10시간 이상 한 적이 없는 그룹의 뇌를 비교했다. 그 결과 게이머들의 전두엽과 후두엽을 연결하는 신경 구조가 더 발달했음이 확인됐다. 강 교수는 이후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초청 강연에서 “게이머들의 시지각 학습(이전에는 못 보던 것을 보게 되고 구분하지 못하던 차이를 알아채는 것) 수행 능력이 뛰어나고 전두엽 활성화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전략게임이 뇌 발달에 효과적이란 결과는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최대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최대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면 게임이 뇌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주장은 바로 게임에 있는 ‘보상’ 개념과 연관이 깊다. 보통 우리는 게임을 할 때 미션에 성공하면 그게 레벨업이든, 아이템이든 보상을 받는다. 이때 뇌에는 보상중추와 관련된 쾌락 호르몬 ‘도파민’이 분비된다. 문제는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면 쾌감 회로가 왜곡돼 ‘기분이 좋다’고 느끼게 하는 수용체 수가 줄 수 있다. 마약에 손을 댄 사람이 갈수록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투여량을 계속 늘려 중독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08년 분당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김상은 교수팀이 게임을 과도하게 하는 11명의 뇌를 관찰했더니 오른쪽 전두엽(안와전두피질)과 왼쪽 미상핵, 오른쪽 도회에서 정상인보다 높은 활동성을 보이는 것이 확인됐다. 부위는 각각 충동 조절, 보상 처리, 중독과 관련된 인지 기능을 하는 대뇌 영역이다. 특히 안와전두피질은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중요 부위로, 이상이 있으면 합리적 판단이 어렵고 충동적 성향을 보인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었다. 마약의 한 종류인 코카인 중독자도 이 영역이 높은 활동성을 보인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게임 중독이 마약 중독과 같은 뇌 신경학적 질환이라는 주장이어서 당시 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2000년 이후 게임과 뇌를 다루는 다양한 논문들이 소개됐지만 ‘게임중독이 치료의 대상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하지만 무엇을 ‘중독’이라고 정의하는 건 복잡한 문제고 정확하고 엄격한 정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특히 뇌과학적 접근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분노가 극에 달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뇌의 동일한 부분이 활발하다고 한다.

강동화 교수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사랑이 마약이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뇌과학적으로도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사랑이 배척돼야 할 마약은 아니다.”

2014년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게임병, 그리고 사회적 치유’ 포럼에서 새로운 고민을 던지기도 했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고, 자살하고 싶은 주된 이유가 ‘성적 및 진학 문제’다. 게임에 왜 빠지게 되는가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게임을 질환으로 이해하는 접근을 하면 학업 스트레스 같은 실질적 원인을 바라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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