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문제로 토지공개념 강화
사유재산이지만 공공성도 있어
‘국가가 특정한 경우 제한’ 담아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 표현 삭제
인사권 축소 등 권한 상당히 조정
‘국회, 국무총리 추천’은 소수안
의견 일치하지 않아 복수안 올려
안락하게 지낼 ‘주거권’ 인정 땐
청년 세대 공공주택 요구 가능
개헌안, 국회 통과하지 못해도
대통령이 발의해야 한다고 생각
국민 관심 갖는 중요 계기될 것
정해구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6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된 헌법 개정 자문안에 기본권 강화, 대통령 권력 분산 방안이 담겼다고 밝혔다. 기본권 조항 중엔 생명권, 환경권, 주거권 등이 신설됐다. 생명권의 경우 사형제도 폐지와 연결될 수 있어 관심이다. 정 위원장은 “1987년 이후 새롭게 부상된 기본권이 상당히 많다”며 “시대 변화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또 현행 헌법의 검찰 영장청구권 독점 조항은 빼고, 대통령의 국가원수 표현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두고 야권 반발이 커지는 상황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발의하면 통과 여부를 떠나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심을 갖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통과를 못해도 대통령이 발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_개헌안을 마무리한 소감은.
“중요한 문제를 맡아 부담감이 많았다. 홀가분하다.”
_개헌안 초안 보고 때 문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나.
“주로 자문특위 위원들에 수고했다는 말이었고 또 하나는 국회에 대한 말이었다. 국회에서 개헌안 합의를 못 해서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려면 대통령이 나설 수밖에 없었으니 국회도 책임 있는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다.”
_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원래 정부에서 개헌안을 만들 때는 국무총리와 민간인이 위원장을 맡아 범정부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국회에 도전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정책기획위에서 헌법자문특위라는 개헌기구를 만들어 준비하는 것으로 규모를 줄였다. 국회가 합의를 못 해서 대통령이 발의하지만, 국회에 도전하는 모양새는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국회가 못 해서 했는데 왜 청와대가 나서냐고 하니 답답함을 느낀 것 같다.”
_대통령은 부칙을 마련해달라고 했는데.
“부칙은 헌법의 효력 발생 시기와 관련이 있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만드는 게 옳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부칙까지 완성시켜 달라고 해 위원들 사이에서는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남았다’고 했다(웃음).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시기를 맞추는 문제 등을 부칙에 넣었다.”
_야당은 개헌안 초안을 보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여전하다고 비판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통치 스타일, 사람의 문제다. 가령 검찰ㆍ경찰ㆍ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구를 동원해 자기 통치를 유리하게 하는 것이다. 또 과거 대통령이 여당을 휘하에 두고 지휘해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밀어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문 대통령은 권력기구를 동원하는 건 하지 않아 사람 문제는 많이 해소됐다. 남은 건 두 번째 제도의 문제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히 조정했다.”
_대통령의 권한은 어떻게 조정했나.
“대통령은 국가원수라는 표현이 빠진다.(※헌법 제66조 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최고책임자 지위에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유신 때 들어온 표현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들어간 것 같다. 다만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는 기능은 남겼다.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도 조정하고, 대통령의 인사권을 줄이는 문제도 많이 담겼다.”
_국무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주는 안도 복수안 중 하나로 담겼다. 야당에 협상 여지를 남긴 것인가.
“복수안으로 올라가긴 했지만 자문특위 내에서도 지지자가 많지 않은 소수안이었다. 다수는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총리를 임명하는 현행안에 찬성했다. 다만 자문특위에서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복수안을 올려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_야당에서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비판하는 지점들이 있다. 토지공개념 부분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토지를 사적 소유로만 생각해 돈만 있으면 사서 활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최근에는 좁은 땅에서 부동산 문제가 워낙 심각해 토지의 공공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다. 토지는 사적 소유 대상이지만 부분적으로 공공성이 있어서 국가가 특정한 경우 제한을 가할 수 있는 내용을 넣었다. 무한정하지 않은 토지에서 서로 더불어 살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는 규정이다.”
_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바꾸거나 공무원 노동 3권을 확대하는 내용은 노동계의 의견만 반영했다는 지적과 이런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반론 등이 존재한다.
“원래 근로자라는 말은 우리나라밖에 안 쓴다. 다른 나라에서는 다 노동자로 부르고 있어 원래대로 정상화시키는 취지다. 공무원 노동 3권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시 확인하는 내용이다.”(현행 헌법 제33조 2항은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자에 한하여 단결권ㆍ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예외적으로 노동 3권을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_국민 소환제나 발안제를 헌법에 명시하는 건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민 소환제ㆍ발안제를 주로 지방정부에서 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많이 집행하지 않는데 우리나라에선 필요하다는 게 자문특위의 생각이다. 국민의 국회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심하기 때문이다. 또 6월 항쟁 등 국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전통이 있었다. 다만 직접민주주의로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건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대의민주주의 발전을 촉진하자는 의미다.”
_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에 대해 논란이 많다.
“현재는 영장 신청을 검사만 할 수 있도록 헌법(제12조 3항)에 규정돼 있다. 그래서 법률적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가 있어서 헌법에서 빼는 걸로 했다. 검사도 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른 주체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법에서 뺐다.”
_정부가 추진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이 있나.
“검경 수사권 조정은 법률 사항이다. 헌법과는 무관하다. 다만 그런 부분도 고려했다.”
_사법참여를 확대하겠다고 했는데.
“배심재판(국민참여재판)을 헌법 규정으로 둬서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여지를 많이 열어뒀다. 지금도 배심제가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헌법 규정이 없어 잘못하면 위헌 판결을 받을 수 있다.”
_청년 세대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했나.
“청년ㆍ청소년 숙의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각 분과들이 논의해 반영케 했다. 특히 기본권 강화 부분은 주로 미래세대에 혜택이 돌아갈 것 같다. 가령 청년들이 가장 고통 받는 게 주택 문제다. 헌법에 안락하고 쾌적하게 주거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해 주거권이 인정되면 청년세대가 공공주택 같은 것을 시혜가 아닌 권리로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_기본권에 생명권 조항도 신설된다는데.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생명권은 아마 사형제도와 연관될 것 같다. 생명권이 강하게 보장되면 사형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다만 우리(자문특위)가 거기까지 가진 않았고, 생명권을 권리로서 헌법에 보장했다.”
_헌법 제36조 ‘양성의 평등’ 문구를 ‘성 평등’으로 수정하자는 제안을 두고 기독교계는 동성애 문제로 걸어 이슈화했다. 이 대목은 어떻게 정리됐나.
“양성 평등이든, 성 평등이든 제가 볼 때는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찬성을 한다. 그런데 이게 다른 방식으로 왜곡돼 과잉정치화 됐다.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을 많이 했는데, 복수안이 마련됐다. 내용 차이는 아니다. 한쪽에선 갈등을 불러 일으켜도 정면으로 (성 평등 문구 수정을) 하자, 한쪽에선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을 피하기 위해 표현을 약간 바꾸자 이런 것이다.”
_경제민주화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전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소상공인의 보호와 육성 이런 내용을 포함했고, 중소기업에 관한 내용도 별도 조항으로 둬 강화했다. 소비자의 권리도 강화했다.”(※헌법은 제119조와 제23조 등을 통해 자유와 경쟁에 기초한 경제질서를 보장하는 한편,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와 조정 권한을 적극적으로 국가에 부여하고 있다.)
_대통령 개헌안 발의 입장에 대한 야권의 비판이 거세다. 대통령이 발의를 할 것으로 보나.
“만약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 안 하면 국회가 합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발의를 연기해달라고 하면 몰라도 지금까지 합의 못하고 발의하지 말라는 게 과연 개헌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발의한다고 해도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자유한국당 안에서 의견이 나뉘면 통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통과되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심 갖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개헌안이) 통과 못 돼도 대통령이 발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회에 압박이 되고, 국민적 관심을 갖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정상원ㆍ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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