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성추행’ 배우 조민기 이어
의혹 제기된 외대 교수도 자살
“무분별한 고발ㆍ과잉 비난 자제를”
“미투운동 동력 잃을라” 우려도
“사실상 여론재판 아닌가요?”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배우 조민기씨에 이어 학생 성추행 의혹에 휩싸였던 한국외대 교수가 17일 숨진 채 발견되면서 미투(#Me Too) 운동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고발과 무차별적인 과잉 비난을 조금은 자제할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미투 운동의 동력 상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함께 제기된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한국외대 소속 A 교수가 유서를 남겨둔 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의혹은 14일 페이스북 한국외대 대나무숲에 올라온 글을 통해 불거졌는데, 한국외대는 다음날인 15일 별도 조사팀을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사망 전날인 16일 A 교수를 면담했다. 대학 측은 “고인이 교육자로서 의혹에 대한 극심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모든 의혹 관련 조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 여파를 걱정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피해 사실과 신상 공개, 네티즌의 일방 비난 등이 의혹 당사자에게 힘겨운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 A 교수 사망 관련 기사 댓글에는 “인터넷에 고발할 게 아니라 정식 고소를 해야 한다” “한번 거론되면 사회적 매장이나 자살, 둘 중 한 가지 선택밖에 없는 것 같다” 등 여론이 반영되고 있다.
사망은 결국 개인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결과일 뿐, 제보자들을 매도하는 쪽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한국외대 대나무숲에는 ‘A 교수의 과거 행위에 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을 뿐 목숨으로 대가를 치르라는 요구를 한 적이 없다. 과오와 잘못과 상처를 지우고 바로잡는 유일한 길은 죽음이 아닌 진정한 사과와 반성 뿐’이라는 글이 올라와 호응을 얻고 있다. SNS에는 ‘#죽는다고_성범죄가_사라지진_않는다’는 해시태그가 확산되는가 하면, “고인들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범죄에 대한 죗값을 그런 식으로 씻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초동 대처의 아쉬움도 지적된다. 조씨의 경우 이미 2016년 12월 성희롱 의혹이 불거졌으나 경쟁관계인 연극학과와 영화과의 반목으로 인해 빚어진 일로 추정,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A 교수 역시 2006년 학내 성희롱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된 바 있지만, 학교 측은 오히려 성희롱 사실을 폭로한 재학생에게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대학이 사전에 적절한 대처를 했다면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미투는 지금껏 우리사회에서 침묵 방관 아래 묵인됐던 것이 이제야 터져 나오게 된 것”이라며 “가해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 목소리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고발과 진상조사는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44개 국·공립대 연합 여교수회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미투 목소리는 오랫동안 누적된 성차별과 일상화한 여성 비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표출하고 있다”며 “정파적 대립으로 인해 운동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고 본질적인 변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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