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혐중(嫌中)ㆍ혐한(嫌韓) 현상’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일상이 되고 있다. 대형 출판사가 관련 기획물을 내고 출간된 책은 베스트셀러로 입지를 굳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중국ㆍ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일본인들에게 불편을 초래하거나 신경이 거슬린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그러나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 일본 경제를 살려내는 마당에 이같은 이율배반적 세태를 지적하는 일본 내 자성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가 쓴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코단샤)은 지난해 신간ㆍ논핀션 부문 최다 발행부수(47만부)를 기록했다. 지난달엔 속편도 나왔다. 일본인의 “높은 도덕규범”을 치켜세우는 한편, 한국인과 중국인을 “금수(禽獸ㆍ짐승) 이하의 사회 도덕”이라고 공격한다.
이런 원색적인 비난 글이 왜 팔리는걸까. 저자는 오락퀴즈 프로그램 출연으로 인기를 얻고 최근엔 보수 우익잡지에 헌법이나 일본 문화에 대한 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책에선 “일본인에겐 이타(利他)정신이 있다”는 반면, 한국과 중국인에 대해서는 ‘자기중심주의가 핵심인, 유교정신으로부터 도덕심과 윤리관을 잃어버렸다’고 공격한다. 또 한국인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최근 아사히(朝日)신문은 이 책이 나온 배경을 소개했다. 출판사 편집자가 직장인 밀집지인 도쿄 신바시(新橋)의 선술집에서 손님들이 한중인에 대해 위화감을 쏟아내는 장면을 지켜본 게 기획 동기가 됐다고 한다. “한중인은 우리와 다르다”는 화두가 지금 일본인의 실제적인 관심사란 것이다. 이후 일본인은 서양인에게 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일본에 오래 산 미국인 변호사에게 그들이 일본인과 어떻게 다른지 써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엔 출판사 직원들도 차별의식을 부추기는 책 출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주변에 존경하는 재일교포를 친구로 둔 일본인이 많음에도, 인터넷을 보면 증오발언이 넘쳐나고 한일관계는 꼬여있는 현실에 대해 제3자인 미국인의 의견을 듣고 싶은 수요가 분명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중국과 한국의 국민성을 비판하는 책은 많은데다 “틀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견해를 제시할 뿐”이란 논리다.
그럼에도 간토가쿠인대(關東學院大) 아케도 다카히로(明戶隆浩) 강사(다문화사회론)는 “일본을 치켜세울 뿐이라면 단순한 민족주의지만 한중을 멸시해 자신들의 위치를 높이려는 게 특징”이라며 “명백한 공격적 표현을 고상하게 보여 차별의식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한국ㆍ중국인에게 불만을 돌림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구조는 역설적으로 내부 콤플렉스를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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