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하는 신의현/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김의기] 장애인 노르딕스키 국가대표 신의현(39ㆍ창성건설)이 5전 6기 끝에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12년 전 두 다리를 잃고 절망의 시간을 보냈던 신의현이 노르딕 스키 입문 3년 만에 26년 한국 패럴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신의현은 17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 7.5㎞에서 22분 28초 40의 기록으로 이번 대회 6번째 도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지난 11일 크로스컨트리 15㎞에서 이미 동메달 획득했지만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주변의 기대에 대해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이어진 바이애슬론 경기에서 연달아 사격 실수를 범하면서 메달권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바이애슬론 종목에서 메달 획득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그의 실망감은 더했다.
사실상 마지막 금메달 도전이었던 17일 신의현은 체력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도 최후의 역주를 펼치며 그간의 아쉬움을 한 순간에 털어냈다. 신의현이 이번 대회에서 다리가 아닌 두 팔로 레이스를 펼친 거리는 6종목에 걸쳐 61.7km에 달한다. 그야말로 철인의 인간승리다. 앞서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거두고 “고맙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던 신의현은 이날 시상식에서 두 팔을 벌리고 포효한 뒤 활짝 웃었다. 신의현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친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결승선까지 1위를 달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10일 강원도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패럴림픽 바이애슬론 남자 7.5㎞ 좌식 종목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신의현을 어머니 이회갑 씨가 어루만지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신의현의 인생 시계를 12년 전으로 돌려 2006년을 떠올리면 여전히 끔찍한 악몽으로 기억된다. 2006년 2월 대학 졸업을 하루 앞둔 그는 1.5톤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었다. 의사는 두 다리를 절단해야 그를 살릴 수 있다고 진단했고 의식이 없던 신의현을 대신해 ‘강한 어머니’이회갑씨(68)는 눈물을 머금고 하지 절단 동의서를 작성했다.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신의현은 “자신을 왜 살려냈느냐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신의현은 가족을 원망하고 3년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20대 중반 청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었다.
다리를 잃은 신의현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스포츠와 어머니였다. 재활에 나선 신의현은 장애인 아이스하키부터 사이클까지 다양한 운동들을 섭렵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조금씩 키워나갔다. 어머니는 "다리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며 아들을 뒷바라지 했고 그 결과 신의현은 2015년 민간기업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인 창성건설 노르딕 스키팀에 합류하는 기쁨을 누렸다. 어머니와 시각 장애를 앓는 아버지 신만균(77) 씨, 베트남에서 시집 온 아내 김희선(31)씨, 그리고 신의현의 두 자녀는 이번 대회 내내 경기장을 찾아 목청껏 응원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신의현이 가장 먼저 찾은 이들은 역시 가족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웃게 해드려 기쁘다. 돌아가실 때 눈 못 감으실까 봐 결혼도 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도 보여드리려고 했다.효자 되겠다. 어머니 사랑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들을 지켜본 어머니도 마침내 활짝 웃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아들에게 고맙다는 이회갑 씨는 “이제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며 "의현이가 돼지고기를 넣은 얼큰한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푸짐하게 한 상 차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동안 열전을 거듭해온 평창 동계패럴림픽 대회가 18일 오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김의기 기자 show9027@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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