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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세] 우유니 사막 품은 볼리비아 “잉카는 살아있다”

입력
2018.03.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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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다만세는 ‘다시 만난 세계’의 줄임말입니다. 국제뉴스에서 소외됐던, 그러나 흥미로운 나라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하늘과 땅이 몸을 섞는다”는 한 여행가의 표현처럼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는 이 곳. 새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우유니 사막’이다. 우유니 사막은 먼 옛날 지각변동으로 하늘 높이 치솟은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녹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분지형태의 지형 때문에 물만 증발하고 남은 소금이 수억 년간 빗물과 햇볕에 노출되며 사막을 이룬 것. 사막인데도 우기에 더 인기가 많은 건, 비를 머금은 소금이 하나의 거대한 거울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멋진, 때문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매년 손꼽히는 우유니를 품은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볼리비아’다. ‘남미’ 하면 ‘우유니’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아도 볼리비아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미 여행을 계획하면서 우유니는 필수지만, 볼리비아는 ‘우유니를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들르는 곳’ 쯤으로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볼리비아는 그렇게 지나치기엔 아쉬운 나라다. 잉카 문명의 발상지이자, 여전히 잉카 제국의 후예들이 그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매력적인 땅으로 떠나보자.

볼리비아 최대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우유니 사막. 우기가 되면 이처럼 비를 머금은 소금이 하늘을 반사시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다. 플리커 제공
볼리비아 최대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우유니 사막. 우기가 되면 이처럼 비를 머금은 소금이 하늘을 반사시켜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다. 플리커 제공

최초의 잉카인이 탄생한 티티카카 호수

잉카는 12세기 초 남아메리카의 중앙 안데스 지방에서 탄생한 고대 국가다. 볼리비아 사람들에게 잉카는 ‘민족의 뿌리’다. 이들은 스스로 ‘잉카의 후예’임을 자신하며, 잉카신화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 신화의 서막이 열리는 장소 또한 볼리비아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태양의 섬’이다. 잉카인들이 숭배하는 태양신 ‘인티’가 이 섬의 한 동굴에서 달과 함께 생겨났고, 이 둘이 결혼해 티티카카 호수로 밀월 여행을 떠난 뒤 최초의 잉카인이 탄생했다. 최초의 잉카인은 훗날 에콰도르 고원부터 중부 칠레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지역에서 약 700만 인구를 다스리며, 잉카를 ‘남아메리카 최대의 제국’으로 만들었다.

잉카 문명의 발상지인 태양의 섬엔 현재 180여개의 잉카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때문에 개발이 철저히 금지돼 있고 유적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차나 오토바이 등은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태양의 섬 전경. 플리커 제공
태양의 섬 전경. 플리커 제공

잉카문명을 계승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태양의 섬에서뿐만 아니라 볼리비아 사회 전반에서도 나타난다. 국가의 중요한 행사를 해가 가장 긴 하지 때 여는 게 대표적이다. 특히 볼리비아에선 신년을 1월1일과 6월21일 등 1년에 두 번 맞이한다. 1월은 전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신년이고, 6월은 잉카 달력에 따른 ‘아이마라 신년제’를 지낸다. 원주민들이 인구의 절반 가량인 탓에 6월 행사 또한 1월 못지 않게 성대하게 치러진다. 종교적인 면에도 전통문화가 스며있다. 볼리비아는 스페인 식민 시절을 거치며 가톨릭으로 개종됐는데, 이때 원주민들이 이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 해 받아들였다. 볼리비아에서 유독 키가 작고, 머리가 크며 팔 다리가 짧은, 즉 원주민의 형상을 한 예수상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이유다. 또한 잉카 ‘지모신(地母神)’ 신앙의 영향으로 성모상의 크기가 예수상보다 크게 조각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의 착취에서 벗어났으나…

잉카문명의 멸망에 대해선 전염병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1538년 스페인의 침략이 가장 결정적이다. 당시 잉카의 아타우알파 황제는 자신을 ‘신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 자신이 지배하는 땅이 침략당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침략이 시작됐을 때도 황제의 수행원은 7,000여명이었던 반면, 스페인 병력은 17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농기구로 무장한 수천 명은 스페인의 무기와 대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잉카를 손에 넣은 스페인은 1545년 대규모 은광을 발견하자 착취를 본격화했다. 대부분의 은광이 해발 4,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형성된 탓에 수많은 원주민들은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힘겨운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중노동을 견디다 못한 원주민들이 1780년 스페인 지배에 항거하며 볼리비아 전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이 또한 병력의 차이로 손쉽게 진압됐다. 그나마 명백이라도 유지됐던 원주민들의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영향력은 완전히 소멸됐다.

광산에서 일하는 볼리비아인의 모습. 플리커 제공
광산에서 일하는 볼리비아인의 모습. 플리커 제공

은광은 17세기 말을 정점으로 점차 고갈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동시에 스페인의 수탈 정책마저 심해지자 볼리비아인들은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 등의 지휘 하에 스페인을 쫓아내고, 1825년 8월6일 독립을 쟁취했다. 볼리비아란 국명은 독립영웅인 볼리바르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가까스로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크리올(Creole)’이 독립된 볼리비아를 지배한 탓에 원주민들은 여전히 비참한 생활을 면치 못했던 것. 영토도 대폭 쪼그라들었다. 서부 연안의 광물 영유권을 놓고 치렀던 남미태평양전쟁(1879~1883년)에서 패하며 태평양에 접한 ‘안토파가스타주’를 칠레에 내줬다. 본디 해양인접국이었던 볼리비아가 내륙국이 된 이유다. 이어 1932~1935년엔 석유가 대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밝혀진 ‘그란 차코’ 지역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파라과이와 다투다 패배해 독립 당시 영토의 40%를 상실했다.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즈 전경. 플리커 제공
볼리비아 행정수도 라파즈 전경. 플리커 제공

세계 최고(最高) 수도… 케이블카 타고 다니는 주민들

볼리비아는 지리적으론 열대지역에 속하나 안데스 산맥의 영향으로 고도에 따라 다양한 기후가 나타난다. 해발 3,500m 이상인 서부 고원 평야지대는 일교차가 큰 사막 기후를 보이는 반면, 동부 아마존 상류지역은 열대 우림 기후가 나타난다. 행정수도 라파즈 또한 해발 4,000m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로 알려져 있다.

교통수단 또한 남다르다. 라파즈는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부터 협곡을 따라 주거지역이 형성돼 있으며, 대부분의 상업시설이나 행정기관은 해발 3,500m부근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를 잇는 도로가 구불구불하고 좁아 시민들은 매번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고안해낸 것이 ‘뗼레페리코’라 불리는 케이블카다. 여행객이 아닌 주민을 위한 케이블카가 설치된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처럼 노선도 여러 개다. 현재 4개 노선이 깔려 있고, 향후 7개가 추가될 예정이다.

라파즈에 있는 마녀시장. 말린 라마 태아가 가게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플리커 제공
라파즈에 있는 마녀시장. 말린 라마 태아가 가게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플리커 제공

볼리비아는 기후만큼이나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국가명도 2009년 헌법 개정 당시 ‘볼리비아 공화국’에서 ‘볼리비아 다민족국’으로 변경했다. 물리적으론 하나의 나라이지만, 36개 민족이 36개 언어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자는 취지에서다. 원주민들의 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그들의 전통의학도 합법화했다. 원주민들의 전통의학은 칼라와야(약초치료사), 쿠마우타(질병 및 재앙을 물리치는 주술사), 야티리스(정신 치료를 담당하는 점술사), 카와야(약초 등을 사용하는 여사제) 등에 의해 주로 행해진다. 이들은 16세기 카톨릭 교회에 의해 불법화되며 핍박 받았으나, 지금은 라파스의 ‘마녀거리’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실제 마녀거리에선 약초ㆍ부적ㆍ말린 라마 태아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린 라마 태아의 경우, 새 집을 지을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을 준다고 하여 인기가 많다.

리튬, 우라늄 풍부한 자원부국이 중남미 최빈국?

볼리비아는 최근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제조에 주로 쓰이는 ‘리튬’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 우유니 호수엔 전세계 리튬 매장량의 3분의 1인 540만톤 가량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튬시대의 사우디아라비아’란 별칭이 아쉽지 않은 이유다. 리튬은(지금은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지만) 향후 배터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 볼리비아에 엄청난 부를 안겨줄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우리나라도 이명박정부 시절 광물공사가 ‘리튬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박근혜정부 들어 부실로 낙인 찍히며 무산된 전례가 있다. 볼리비아는 이 밖에도 핵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는 우라늄을 상당량 보유했을 뿐만 아니라 45만톤에 달하는 주석과 7,400억㎥의 천연가스도 갖고 있다.

막대한 양의 리튬을 품고 있는 우유니 사막. 플리커 제공
막대한 양의 리튬을 품고 있는 우유니 사막. 플리커 제공

하지만 ‘자원부국’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볼리비아는 중남미 최빈국이다. 1인당 국민소득(GNI)이 우리나라(2만7,600달러)의 약 11% 수준인 3,105달러이고, 낮은 경제성장률로 지난해 도시 실업률은 9.4%에 달했다. 그나마 빈곤율은 정책적인 지원 덕에 2015년 38.2%에서 이듬해 16.2%로 크게 감소했으나 주변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불안정한 경제는 사회 전반에까지 먹구름을 드리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들어 심각해진 범죄 유형만 12가지에 달한다. 주로 라파스와 위성도시 엘알또에서 빈발하는 범죄다.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접근해 특정 공간으로 유인한 뒤 위협하고 금품을 빼앗는가 하면 ▦거리나 대중교통 안에서 목 졸라 살해하고 소지품을 갈취하는 등 대부분 매우 위협적이다. 올해 1월엔 태양의 섬을 관광하던 40대 한국인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태양의 섬은 ‘여행자제’, 볼리비아 전역이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치안을 위해 정부 또한 경비병력 강화 등을 꾀하고 있으나 아직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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