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정수 김제 하랑영농조합 대표
최첨단 스마트팜 시스템 구축해
흙 없는 온실에서 토마토 재배
월 150톤 생산, 올해 25억 매출 기대
#2
김지용 그린로드 대표, 고서 뒤져
커피 맛 나는 ‘작두콩 차’ 만들어내
카페인 없고 몸에도 좋아 창업 속도
각종 공모전 최대한 활용해 홍보
#3
서비스 기업 ‘리아프’ 남슬기 대표
테이크아웃 커피잔 안에 각종 꽃 담아
‘꽃은 사치’ 편견 깨고 5000원에 팔아
여성 불모지 농업 분야서 입지 다져
“MBA는 필요 없다. 당장 농대로 가라.”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3년 전 서울대 강연에서 던진 이 말은 쌀농사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농업계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내 미래 비전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농업으로 인재들이 몰려가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었고, 그동안 조기 은퇴를 걱정하는 중년 남성의 귀촌 프로젝트 중 하나로 여겨졌던 농사는 곳곳에서 새로운 미래 산업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내로라할 2030세대가 하나둘 ‘미래농부’라는 타이틀을 붙여 농촌으로 향하면서 고령자의 피땀에 의존한 쌀농사 위주의 농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농가 인구의 47%가 고령화로 줄어들면서 텅텅 비어버린 농촌에서 오히려 기회의 문을 열어젖힌 젊은이들을 이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흙 없는 온실에서 자라는 토마토
곡창 지대로 유명한 전북 김제시 만경읍 만경평야 한복판에 거대한 유리온실 2동이 우뚝 서 있다. 온실 전체 면적은 축구장 5개 규모에 달하는 3.47헥타르(㏊).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은 온실로 들어서자 더했다. 3월 중순 평야의 찬 기운을 잊게 할 열기는 온실 내부를 채운 10만여 주의 토마토 줄기를 고루 덥히고 있었다. 토마토를 따는 직원들이 간간이 눈에 띌 뿐 인기척이 드물었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그날이 오면’ 노랫소리를 빼면 기계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 거대한 온실을 지휘하는 허정수(30) 하랑영농조합법인 대표는 “모든 게 자동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허 대표의 사무실 책상에 놓인 커다란 모니터는 시시각각 움직이는 그래프들과 수치로 가득했다. 모니터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허 대표는 농부라기보다 정보기술(IT) 기업 프로그래머를 떠올리게 했다. “토마토는 날씨에 민감하죠. 온실 안팎에 있는 센서 10여개가 온도, 습도, 일조량, 강우량, 공기 순환 상태 등에 따라 환기창과 차양막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여러 변수를 고려해 미리 설정값을 정해주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온실 환경을 그 값에 맞추도록 합니다. 설정값을 정하는 것은 경험과 공부의 결과로 나온 저만의 무기죠. 차로 40분 거리인 전주에서 출퇴근하는데 퇴근해도 온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 온실에는 흙이 없다. 온전히 흙에 의존해온 기존 농업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흙 대신 토마토를 키우는 것은 코코넛 겉껍데기를 잘게 부순 ‘코코피트(Cocopeat)’. 흙에 비해 병충해 염려가 덜하고 관리도 편하다. 토마토를 따려면 보통 노지를 기다시피 하며 수확해야 하지만 이 온실은 인위적으로 줄기 높이를 올려 작업자가 선 채로 수확할 수 있도록 해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를 얻고 있다.
허 대표가 온실과 관련 시스템에 상당한 비용을 들인 것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요즘 토마토 재배 추세는 대형 유리 온실입니다. 빛이 잘 통과하기 때문에 잘 익을 수 있는 온도에 빨리 다다르고, 이는 생육 기간을 줄여줍니다. 때문에 노지나 비닐하우스에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가는 줄어들고 다들 재배 시설을 유리 온실로 하고 사이즈를 키워 나가고 있죠. 단가도 떨어지고 있으니 결국 좋은 품질의 토마토를 얼마나 많이 생산 하느냐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봐야죠.” 농림식품수산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이 같은 스마트팜(Smart farm) 시스템 설치가 늘면서 1인 당 생산량은 전보다 40.4% 증가했고, 고용 노동비는 15.9% 감소했다. 병충해, 질병 발생 횟수는 무려 53.7% 줄어들었다. 젊은 인재가 돌아오는 농촌의 주머니가 두둑해진 셈이다.
허 대표 역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015년 처음 1만9,800㎡(약 6,000평)의 첨단 온실을 지은 데 이어 지난해 9월 1만4,800㎡(4,500평)을 신축했다. 첨단온실신축지원사업, 스마트팜종합자금 등을 통해 농협에서 총 83억원을 대출받았다. “적은 나이에 큰돈을 대출받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동안 쌓은 실적과 사업 계획을 꼼꼼히 심사한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만만치 않겠지만 해 낼 자신이 충분히 있습니다.” 한 달 평균 100~150톤의 토마토를 생산하는 허 대표는 지난해 15억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5억원을 예상한다.
“중학생 때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경험과 학습을 충분히 쌓은 덕분이죠.” 일찌감치 농사꾼을 꿈꾼 허 대표는 2007년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다. 농수산 정예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997년 설립된 3년제 농수산대는 이론과 실습을 두루 가르치면서도 학비가 무료이다.
허 대표는 2학년 때 실습수업을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인근 농장을 다녀왔다. “첨단 유리 온실에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재배 환경을 접하면서 앞으로 농장을 운영하면 어떻게 해야겠다는 청사진을 대략 그릴 수 있었죠. 농업인을 전문직으로 분류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부러웠습니다.”
2010년 졸업과 동시에 아버지의 토마토 농장에 합류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공무원 출신인 아버지는 2000년대 중반 장미를 키워 일본에 수출했다. 그러나 엔화 폭락 탓에 수출이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접고 경매로 나온 온실을 인수해 토마토를 키우기 시작했다.
농업마이스터대학에서 토마토 재배 수업을 듣고, 전문 재배컨설턴트로부터 제어 시스템, 가공, 유통, 판매 노하우 등에 대한 ‘개인 과외’를 받으며 경험을 쌓은 허 대표는 3년의 담금질을 거쳐 2013년부터 홀로 서는 준비에 착수했다. 이후 자금 마련, 시설 설치에 2년을 보내고서야 자신의 온실을 열 수 있었다. “단위 면적 당 생산성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숙제는 여전히 유효하구요.”
재배 컨설팅 전문 회사 아그빌의 유근 컨설턴트는 “허 대표처럼 첨단 유리 온실의 자동 제어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례는 흔치 않다”고 전했다. 허 대표는 수확한 뒤 상품성이 떨어지는 토마토를 활용해 주스 등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사업도 시도해 볼 계획이다.
‘본초강목’에서 착안한 작두콩 커피
김지용(34) 그린로드 대표는 2016년 무카페인 작두콩 커피 ‘킹빈’을 만들어 냈다. 한국농수산대 3학년이었던 그는 졸업 후 창업을 계획했고, 남들이 손대지 않은 새로운 식품을 만들어 승부를 걸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때 작두콩이 몸에 좋다고 했던 강의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짜고짜 작두콩 연구를 시작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 ‘본초비요(本草備要)’ 등 중국의 의ㆍ약서들을 뒤져보던 그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염증을 없애 준다’, ‘작두콩을 태워 먹으면 감꼭지보다 좋다’는 내용에 붙들렸다. 이후 논문 등을 통해 작두콩 약효가 콩깍지가 아닌 콩알에 응집해있다는 것도 확인한 그는 ‘작두콩으로 커피처럼 로스팅을 통해 차를 만들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커피가 아니면서 커피이기도 한 유일무이한 차는 이렇게 탄생했다.
김 대표는 작두콩차가 상품으로서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직접 길러봐야 했다. 하지만 농촌 출신이 아니고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먼저 땅 구하기. 전북 정읍 일대를 발품 팔고 다니며 마을 이장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태인의 고추밭, 용동의 들깨밭 1만3,200여㎡(4,000평)를 260만원에 임대했다. 농사 직불금 90만원을 빼면 170만원가량만 들어간 셈. 또 농업기술센터로부터 ‘후계농업경영인’으로 선정돼 농협에서 대출받아 농지 2,640여㎡(800평)을 추가로 매입했다.
2016년 4월 재배를 시작했다. 다행히 작두콩이 가뭄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필요한 농기계는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임대사업소에서 빌려다 썼다. 일손이 부족하면 학교 동생들에게 일당을 주고 도움을 청했다.
그해 가을 딴 콩을 미리 마련한 커피 볶는 기계에 넣어 학교 실습실에서 실험을 반복했다. 특히 콩을 태우는 과정에서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생기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일반 작두콩 차보다 약효가 4배 좋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없는 ‘무카페인 작두콩 커피-킹빈’이 탄생했다.
하지만 즉시 판매에 나서지 않았다. “서둘러서는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새 제품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반응을 알아야 했습니다. 주말 등 시간 날 때마다 전국 곳곳 행사장을 다니며 시음을 반복했죠.”
하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홍보, 마케팅은 역부족이었다. 각종 공모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주최한 ‘농식품아이디어 경연대회’에 킹빈을 출품해 최우수상과 상금 1,000만원을 탔다. 상을 받으며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은 물론 어려움을 겪던 홍보와 마케팅에도 길이 열렸다. “농협에서 주최하는 여러 행사에 참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품을 알리고 행사 참가자들의 반응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수정, 보완할 수 있었죠.”
작두콩 농사 2년 차에 접어든 지난해 창업에 속도를 냈다. “연말에 사업자 등록과 출시를 목표로 준비를 이어갔습니다.”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 식품벤처센터 입주를 신청해 사무실, 창고, 제조 공간을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그린로드’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전북대 창업 선도자금 3,500만원과 농업기술화실용재단의 마케팅 비용 700만원, 중소기업청으로 지원받은 기계를 가지고 출발선에 섰다. 지난해 말 농협의 소개로 포털 다음이 운영하는 ‘스토리펀딩’에 킹빈을 알렸다. “일반 소비자에게 처음 판매를 하기 때문에 떨렸죠. 카페인이 없고 진짜 커피는 아니지만 커피 향과 맛이 있어 임신부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팩에 1만3,000원으로 판매를 시작해 20일 동안 1,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1, 2월 판매 성적이 생각보다 좋아 전략을 수정했다. “작두콩이 계획보다 많이 필요할 것 같아 전남 화순의 작두콩 재배 농장과 맺었던 계약 물량을 2배로 늘렸습니다. 또 제가 농사짓는 마을 어르신들께 작두콩 농사를 하면 물량을 모두 매입하겠다 했더니 벌써 네 분이나 작두콩을 새로 심기로 했어요.”
김 대표는 깜짝 인기로 끝나지 않도록 고치고 또 고치는 중이라고 했다. 판매망 확보, 제품 디자인, 포장 방법 등에 대해 고민을 계속하고, 작두콩 연구도 이어간다. “킹빈이 비염 완화에 좋더라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듣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꽃 한 송이의 유혹
꽃을 주제로 한 문화 서비스 기업 리아프(LIAF)를 운영하는 남슬기(34) 대표는 요즘 ‘꽃 한잔하실래요’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떠올리게 하는 플라스틱 컵과 종이컵 안에 여러 종류의 히아신스를 뿌리째 담아 사무실이나 가정에서 부담 없이 꽃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격도 커피 한 잔 값(5,000원)이다.
남 대표는 꽃은 사치라는 편견, 키우는 게 번거로우니 즐기기도 쉽지 않다는 인식 등 두 가지 선입견을 깨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 이름도 ‘우리의 삶이 꽃(Life is a flower)’이라는 문장을 이룬 단어들의 두문자를 따서 지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고 2010년까지 국제회의 기획회사에 다녔다. “생각했던 것과 일이 달랐습니다. 쳇바퀴 돌리듯 회의만 쫓아다니면서 부품 같았습니다.” 원하던 회사에 다녔지만 그만두게 되면서 허탈감과 함께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고향(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부모님이 아산에서 운영하는 식물원 ‘세계꽃식물원’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종묘회사에 다니던 아버지 남기중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해외에서 종자, 구근을 수입해 직접 길러 판매하는 농원(아산 아름다운정원영농조합법인)을 운영했고, 안면도꽃박람회를 계기로 농원의 절반을 전시장으로 바꾸고 2004년 '세계꽃식물원'을 열었다. 한 해 평균 15~20만 명이 꾸준히 다녀가는 유명 식물원이지만 서비스 측면에서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부모님이 평생을 생산(1차 산업) 위주로 고민해 오셨기 때문에 저는 소비 서비스(3차 산업) 영역에서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2013년 카이스트(KAIST)가 SK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개설한 ‘사회적 기업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해 2년 동안 꽃과 식물을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 외에도 일상에서 꽃을 사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적용도 해봤다. ‘꽃 한잔’ 프로젝트도 MBA 시절 시도했던 것을 업그레이드 한 것.
졸업과 함께 2014년 10월 리아프(LIAF)를 세웠다. 2억5,000만원의 창업자금 중 절반은 보건복지부의 고령자친화기업 지원사업을 통해 융통했고, 나머지는 모 기업인 영농조합에서 마련했다. 이듬해 5월 가장 먼저 꽃, 식물 그리고 가꾸는데 필요한 도구와 소품을 판매하는 가든센터를 아버지의 식물원에 열었다. 아울러 식당, 카페 등 서비스 공간과 원예, 화훼 교육 시설을 마련했다. 화훼 관련 서비스의 디자인이 좋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 착안, 구희선 디자이너와 손잡고 제품과 서비스 관련 디자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생소한 디자인과 모양의 화초를 살까 반신반의했지만 초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한 2016년, 2017년 각각 5억7,000만원, 5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그중 60%가 꽃, 식물 판매에서 나왔다. “꽃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강해 일단 소비자들이 친숙해지도록 제일 비싼 제품도 1만원을 넘지 않게 했어요. 처음엔 식물원 방문객들이 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일부러 찾아와 컵에 든 꽃을 사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어요.”
남 대표는 젊은 여성의 불모지인 농업 분야에서 2세 경영인으로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늘 ‘세계꽃식물원 딸’이라는 수식어가 따랐어요. 부모님의 존재가 다른 젊은 창업농보다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죠. 그러나 사람들에게 누구의 딸이 아닌 제 이름을 먼저 기억하게 하려면 몇 배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 대표는 꽃과 식물로 사무 공간, 공용 공간 내부를 꾸미는 ‘플랜트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1월 국내 한 대기업 사무 공간을 56가지의 꽃, 식물로 꾸몄고, 정기적으로 이를 관리하는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또 올해부터 전시회 등 실내 행사를 진행하는 예술가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장 경험, 멘토가 함께하면 수월해
IT전문가를 연상케 하는 기술, 고전을 파고드는 끈기, 무릎을 치게 하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이들 ‘미래 농부’는 농업에 도전하려는 2030들에 충분한 현장 경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정수 대표는 “땅 얻고, 시설 설치하고, 시스템 익히고, 재배하고, 판매, 유통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정이 없다”라며 “실제 농장에서 이런 과정을 먼저 경험해 보면서 맞는 일인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대표와 2년째 일하고 있는 황명규(28), 장종호(26)씨도 비슷한 조언을 한다. 황씨는 “대학에서 화훼, 원예 전공을 했지만 실습 단계에서 배운 것들은 현실과 매우 달랐다”라며 “농장에서 직접 일을 경험하면서 창업이 만만치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농장 30개소를 지정해 예비 청년 창업농들이 경영 실습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한편, 청년귀농인에 대한 장기교육 과정 개설, 농업법인 취업 지원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도시와 농촌의 생활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지용 대표는 “귀촌은 농촌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라면, 귀농은 삶의 목표를 바꾸는 것이라 할 만큼 큰 변화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시에서는 밤늦게까지 일해 연간 3,000~4000만원을 벌지만 농촌에서는 1년에 50일 일해 1,000만원 번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 대박을 꿈꾸고 농사를 짓겠다 하지만 오히려 당장은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 30대 이하 귀농 청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농촌에서 생계를 유지할 소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김 대표처럼 농촌에 기반이 전혀 없는 도시 출신의 경우에는 거주 공간까지 구해야 해 상황은 더 어렵다.
김 대표는 날씨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는 날, 일 끝나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계획이 서야 한다고 말했다. “농기계 작동법을 배워 아르바이트하거나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한 곳에 가 일하는 것도 좋습니다. 농촌을 이해하면서 부수입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올해부터 영농의지와 발전 가능성이 큰 1,200명의 청년 창업농을 선발해 월 최대 100만원의 정착금을 최장 3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남슬기 대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조언해줄 멘토를 찾으라 권했다. 청년 농업인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들이 있지만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지원해 선정되더라도 정작 필요한 분야에 자금을 쓰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돈만 나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먼저 귀농한 분이나 컨설턴트 등 조언을 구하고 상담할 멘토가 있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상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청년 농부에 대한 지원은 주로 자금 지원 위주였다며 멘토링, 컨설팅 등 단계별 맞춤형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창업을 하거나 취직하려는 예비 청년 농부들을 단계별로 나눠 농사 경력과 농촌 생활 경험 정도 등을 감안해 가급적 전문가와 1대 1로 연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제ㆍ익산ㆍ아산=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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