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왕궁에 올 때마다 미갈의 마음은 설렜다. 아버지 사울 왕의 개인 음악 치료사이며 싱어 송 라이터였던 다윗. 얼굴도 잘생겼지만 궁 안에서 울리는 그의 ‘기타’ 연주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홀딱 뺏을 만 했다. 마치 꿈처럼 미갈은 그 ‘훈남’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진짜 꿈처럼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라는 병적 집착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자기 딸의 달콤한 신혼 방에 들이닥쳐 다윗을 처형하려 한 것이다. 미리 눈치 챈 미갈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저버리고 속임수를 써서 다윗을 구한다. 다윗은 미갈을 두고 왕궁 밖으로 멀리 도망가 버린다.
달아난 다윗, 미갈을 부르다
꿈같은 일이 또 벌어졌다. 세월이 흘러 다윗은 고향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고, 자기의 아내였던 미갈을 다시 찾아 부른 것이다. 이때 미갈은 마음이 어땠을까?
미갈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사울이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딸을 그냥 다른 남자에게 줘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새 남편 발디엘은 미갈이 다윗에게 돌아 갈 때 울면서 쫓아갔다고 성경은 보고한다.(사무엘하 3:15-16) 가부장적인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진짜 보기 드문 ‘순애보’다. 미갈은 좋은 남편과 잘 지냈다.
그래도 미갈의 마음은 솔직히 어땠을까? 여자들에게 한 번 묻고 싶다. 가슴에 멍처럼 남아있던 자기의 첫사랑이 백마 탄 ‘왕’이 되어 자기를 다시 찾아 온 것이다. 정말로 사랑했기에 아버지마저 속이고 떠나 보내야만 했던 첫사랑이었다. 얄궂은 상처가 또다시 시렸겠지만, 그래도 헤브론에 가까워질수록 그 가슴도 더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심쩍다. 미갈 말고 다윗 말이다. 혹자는 다윗이 미갈을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그녀를 찾았던 걸로 본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미갈과의 결혼이 찝찝하고 냄새나는 결혼이었다. 장인 사울이 결혼 지참물로 블레셋 남자들의 거시기 표피를 백 개나 잘라오라고 한 것이다. 사실 사울은 다윗이 그러다가 블레셋 전장에서 죽기를 바랐다.(사무엘상 18:20-21) 다윗도 마음 속에서 그 트라우마를 잠재우지 못했나 보다. 미갈을 자신에게로 데려와야 하는 이유를 말하면서, 다윗은 그녀에 대한 애정보다 다른 기억을 언급하였다. “나의 아내 미갈을 돌려주시오. 미갈은 내가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바치고 맞은 아내요.”(사무엘하 3:14; 새번역)
정치적으로 얼룩진 다윗의 결혼
사실 미갈의 복귀는 다윗의 정치적 제스처일 가능성이 높다. 다윗은 남쪽에서만 왕이었고, 북쪽은 죽은 사울의 세력이 아직도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북쪽 세력이 지리멸렬하기 시작했고, 다윗에게는 북쪽을 흡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북쪽 군대장관이 배반을 하고 다윗을 돕겠다고 제안했을 때, 다윗은 사울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미갈을 자기에게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하였다. 이 절호의 기회에 자신을 북쪽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하기 위한 시도라 볼 수 있다. 자기도 북쪽의 사울 집안과 친인척 관계라는 것이다.
다윗은 이미 예전의 순박했던 청년이 아니다. 턱밑까지 쫓아오던 사울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적에게 투항하여 침을 흘리고 미친 흉내를 내어 목숨을 건진 적도 있었다. 목숨을 부지하려 썩은 고기를 먹는 것처럼 살아왔다. 도망간 다윗은 아비가일과 아히노암과 결혼하는데, 모두 남쪽 출신 여인이다. 다윗에게 결혼은 ‘정치적’ 사업이었던 것이다. 고향 헤브론의 호의를 사기 위해 지도자가 된 자기 친구들에게 선물공세도 듬뿍하였다.(사무엘상 30:26-31) 그리고는 성공적으로 남쪽에서 왕이 된다. 그는 정치 천재가 되었다.
돌아와보니 다윗에게는 이미 여러 아리따운 아내와 후궁들이 있었다. 그 얼굴에 끔찍한 장인 사울이 어른거리는데, 다윗도 미갈을 품에 안고 싶었을까? 참 기구한 운명의 미갈이다. 자신의 순정은 모두 '정치적' 계산에 희생당하였다. 청년 다윗을 흠모했을 때 이를 알게 된 아버지 사울에겐 딸의 순정이 그저 ‘정치적 미끼’일 뿐이었다. 자기 딸과의 결혼을 미끼로 정적이던 다윗을 전쟁터로 유도하여 죽이려 한 것이다. 아버지를 배반하고 다윗을 떠나 보낼 때, 어쩌면 미갈은 사랑이란 돌아오는 것이라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돌아온 건 다윗의 사랑이 아니라 정치라는 더러운 흙탕물이었다.
다윗과 미갈, 불행한 재회
이들의 재회는 불행이었다.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오는 어느 축제 같은 날, “미갈이 창 밖을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주님 앞에서 뛰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다.”(사무엘하 6:16) 그리고는 서로를 찌르는 가시 돋친 대화가 이어진다. 다윗이 춤을 추다 옷이 흘러내린 것을 보고는 미갈이 이렇게 말한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패 가운데 하나가 알몸을 드러내듯이, 자기 신하들의 여종들이 보는 앞에서 벗고 나서니, 그 모습이 참 볼 만하더군요!”(6:20; 가톨릭성경) 여러 여자들 앞에서 방탕하고 염치없게 행동한 이로 쏘아 붙였다. 자기 말고도 여러 여자를 이리저리 거느린 다윗에 대한 질타임이 분명하다.
이에 다윗은 미갈의 심장을 깊숙이 찌르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이다. “그렇소. 내가 주님 앞에서 그렇게 춤을 추었소.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안이 있는데도, 그들을 마다하시고, 나를 뽑으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통치자로 세워 주셨소.”(6:21) 한마디로 하나님이 당신 아버지를 저버리고 날 택했다는 것이다. 위협을 무릅쓰고 배신하여 자기를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미갈에게는 참 쓰디 쓴 말이었다. “이런 일 때문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6:23) 둘이 그 이후 잠자리를 같이 했을 리 없었을 것이다.
대개 많은 성서 독자들은 미갈의 부주의와 부족한 신심을 나무란다. 감히 다윗의 기쁨과 찬양을 비난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라는 흙탕물에 오염된, 쓰디쓴 감정의 뿌리가 또렷이 있다. 정치를 위해선 아버지와 딸, 남편과 아내 사이는 남남보다 더 남이었다. 불행히도 미갈은 남자들의 권력투쟁 가운데 그 인생 전체가 추행당하고 말았다.
다윗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다윗이 워낙 이스라엘의 영웅 중의 영웅이다 보니, 성경을 읽을 때 다윗 주변의 미갈과 같은 여자, 약자, 소외된 자, 상처 입은 자는 또 다시 우리의 ‘읽기’에서마저 소외되기 일쑤다. 그런데 기독교의 성서 읽기는 다르다. 구약성경은 예수가 나기도 전에 기록된 글이지만,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서 전체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긍휼, 즉 사랑의 조명 아래 읽어야만 한다. 영웅 다윗의 육중한 그늘 아래 감히 미갈의 감정은, 그녀의 삶과 사랑 따위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독교 신앙의 읽기는 그럴 수 없다. 강자 앞에서도 약자와 소외된 자를 유독 품으셨던 예수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태복음 25:40) 성경 곳곳의 지극히 작은 이들이 신앙인의 성경 읽기 속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앞에서는 미갈은 결코 다윗 못지않다. 그녀는 비난받기보단 긍휼히 여김을 받아 마땅하다. 비난은 순정을 추행한 정치인이 받아야 하며, 다윗도 예외일 순 없다.
기민석 침례신학대 구약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