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업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협상에 유독 자신감을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단번에 통 크게 수락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즈니스를 다루는 것과 북핵 협상은 다른 차원이라며 각종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세계 1위의 ‘싱크탱크’로 평가 받는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의 제프리 베이더 선임연구원도 북미 회담 전에 지켜야 할 ‘9가지 조언’을 내놨다. 종합해보면 “트럼프 혼자서는 안 된다”, “선택과 집중을 하라”로 요약된다. 베이더 연구원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냈고, 한반도 등 동아시아 문제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협상의 기본은 역시 ‘지피지기(知彼知己)’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전직 북핵 협상가들을 만나볼 것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치명적 실패라고 규정하며, 용도 폐기하는 행태는 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만나야 할 인물들로는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에서 제네바 합의를 만든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 대사와 부시 행정부에서 6자 회담을 이끌며 2ㆍ13합의를 이끌어낸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 오바마 행정부에서 2ㆍ29 합의를 만든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북핵 위기 초창기부터 굵직한 북핵 합의를 만들어낸 협상의 주역들이 쭉 열거됐다.
같은 맥락에서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지 않았더라도 과거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위해 노력한 역대 국방, 국무 장관 등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 헨리 키신저 등 저명한 외교 거장들의 조언도 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에 따르면 북핵 무기 능력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과학자들과의 만남도 필수다. 2004년 북한 영변 핵시설 사찰 경험이 있는 북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선임연구원 등을 추천했다.
고갈된 미국의 대북 협상 라인을 재정비하는 것도 시급하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사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경질에 이어 맥 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입지도 위태로운 상황에서 당장 실무 협상을 이어갈 인물조차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베이더 연구원은 임시방편으로라도 무게감 있는 새 인물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회담 전략으로는 선택과 집중을 제시했다. 비핵화 논의에 집중해야 할 시기인 만큼, 한국에 대한 과도한 통상 압박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한국에 대한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 관세를 면제해주고, 한미 FTA 재협상 문제 관련해서도 WTO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선 안 된다고 주문했다.
회담에 들어가선 북미 평화 선언 등 가시적인 합의물을 도출해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이번 회담의 목표는 북미 양국이 갈등을 끝내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해소했다는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당장 비핵화 담판을 짓지 못하더라도, 양측 공히 협상 대표를 임명해 대화 모멘텀을 살려나간다는 시그널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문제는 회담 전후로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 한국 일본 중국 정상들과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담 장소에 대해선 정치적으로 악용 우려가 큰 평양, 워싱턴, 판문점 대신 싱가포르나 몽골, 스위스 등을 추천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한솔 인턴기자(한국외대 이란어 전공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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