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중에도 죽다 살아난 느낌
남은 주민들 대량학살 두려워 해”
시리아 정부군, 절반 이상 지역 장악
주민들 하루 새 1만2500명 엑소더스
‘죽음 혹은 탈출’.
시리아 내 반군 거점인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동구타 지역에 대해 시리아 정부군이 무차별 공습과 폭격을 퍼붓고 있는 가운데, 병원이 부서져 일주일 전 이 지역을 빠져 나온 한 의사는 AP통신에 “이곳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유엔과 러시아의 휴전제안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군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부터 시작한 공세를 늦추지 않으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터키군의 공세로 시리아 북쪽 아프린 지역에서도 쿠르드족 난민 엑소더스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동구타 지역에서만 정부군의 공습과 지상 작전으로 사망한 민간인만 1,500명을 넘는 등 시리아 내전의 비극은 깊어가고 있다.
15일 동구타 주민 수만 명은 목숨을 건 대탈출을 감행했다. 전날 정부군이 동구타 지역 내 함무라예에 대대적 공세를 편 탓이다. 외신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은 최소한의 짐만 챙긴 채 걸어서 피난길에 나섰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는 동구타 지역을 빠져 나온 주민이 이날만 1만2,500명이 넘었다고 보고했다. 동구타는 2013년부터 정부군에 포위 당하긴 했지만 요즘 같은 규모의 대탈출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정부군의 공세가 그만큼 무차별적이라는 얘기다. UPI통신은 “2013년 이후 동구타 지역에서 목격된 가장 큰 규모의 탈출”이라고 보도했다. 정부군은 현재 이 일대 절반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구타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표현 그대로 ‘생지옥’이다. 한 의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모든 게 다 타버렸다. 이 안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다. 남은 주민들은 대량 학살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현지인은 “공습을 피해서 정부군이 장악한 지역 쪽으로 넘어가면, 반군과 관련됐다는 의심을 받아 보복 당할까 두렵기도 하다” 면서도 “살기 위해서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서진 건물을 지나 탈출하는 와중에도 폭격이 있었는데, 탈출 시도가 너무나도 위험해 죽다 살아난 느낌”이라고 몸서리 쳤다. 인권활동가인 누어 아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함무라예에 사는 지인의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SNS를 통해 그는 “일가족이 죽었는데, 시신들이 그대로 거리에 있다고 한다. 계속된 폭격 탓에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알렸다.
엑소더스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주민들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군들이 철수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주민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찌감치 떠나고 싶었지만 반군이 못 가게 막았다”고 말했다. 동구타 최대 반군조직 중 하나인 페일라크 알-라흐만은 14일 정부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거점인 함무라예에서 철수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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