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인 남성 100명 중 5명, 여성 100명 중 4명꼴. 엄연한 소수지만 소수자로서의 권리는 커녕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비만인’들입니다. 이들에 향한 차별과 편견이 유독 노골적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국일보가 들여다 봤습니다.
제작 : 박지윤 기자
기사원문 : 신지후 기자
“인권에도 순서가 있대요. 비만인 인권은 가장 나중이라는 거죠. 차별받고 있다고 말하면 ‘살은 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이 전부예요.”‘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지만, 그렇다고 소수자로서의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바로 ‘뚱보’라 불리는 고도 비만인들입니다.
키 171㎝, 몸무게 107㎏인 정문석(41)씨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눈치보기의 연속입니다. “직장인 11년 차인데, 출퇴근길에 자리에 앉아본 적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예요." 2명 이상이 앉는 자리를 탐내면 승객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보입니다.
앉아서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는 게 버거운 비만인들에게 좌식 식당은 또 하나의 고역. “지인들이 유명한 맛집이라며 예약해놨다가 자리가 좌식으로만 돼 있어 부탁을 거듭해 식당을 옮긴 적이 여러 번이에요” 키 172㎝, 몸무게 112㎏의 이정숙(가명)씨는 회식이나 모임자리에서 매번 주위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부탁을 해야만 합니다.
취업 과정에서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그 몸으로 빠릿빠릿하게 일 할 수 있겠느냐.""게으른 사람과는 함께 일 못 한다."105kg인 장경상(41)씨는 몸집과는 큰 상관도 없는 직무에 지원했지만 면접관들은 그의 체구를 문제 삼았습니다.
면접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채용의 가장 첫 단계인 서류전형에서부터 키와 몸무게를 적도록 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아요." 실제로 518개 기업 인사담당자 10명 중 1명 가량(13.7%)이 입사지원서에서 키ㆍ몸무게를 적도록 했습니다.
TV프로그램과 영화는 뚱뚱함을 비하 소재로 삼아 비만인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합니다. "비만인들은 다 돼지? 먹는 것 밖에 모르는 멍청이처럼 묘사돼요. 친구들도 저를 똑같이 대했죠. " 키 167㎝, 몸무게 98㎏인 대학생 김현지(23)씨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키 163㎝, 몸무게 98㎏인 심경선(가명)씨는 가족에게까지 모멸에 찬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체중을 제외하면 건강상태는 좋은데 ‘어느 연예인처럼 굶어서라도 살을 빼지 않으면 일찍 죽는다’이런 말은 너무 쉽게 해요."
비만인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내포한 단어들은 버젓이 쓰입니다.
"파오후들(뚱뚱한 사람들의 숨소리 희화화) 은 자기 관리하고 밖에 나와라." "식당에서 쿰척쿰척(뚱뚱한 사람들이 음식 먹는 소리 비하) 하는 소리가 너무 혐오스럽다."
이를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입니다. “한국은 비만인들에게 유난히 혹독해요. 길을 지나며 대놓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거나 이력서에 키ㆍ몸무게를 적는 일은 외국에선 좀처럼 없는 일이죠."영어 강사로 일하는 미국인 조쉬 슬론(34)씨.
소수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 마련에 시동조차 걸지 못합니다.
"이제 꼭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도 작은 부분 하나씩만이라도 손을 대줬으면 해요." 가장 절실한 것은 대중문화 콘텐츠에 난무하는 비만 혐오 표현을 제재하는 것입니다.
정부 구호가 ‘비만은 질병’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으로만 흐르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비만인들의 건강을 우려하는 것과 비만인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인종, 장애,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엔 예민해도 길을 지나는 비만인들에게는 별 거리낌 없이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나라.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자로 사는 비만인들의 힘겨운 외침에 이제는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기사 원문 : 신지후 기자
제작 :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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