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여부 판단의 유력 근거
검찰 “직접 수정해달라 여러 번 요청”

14일 오전 9시 22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다음날 오전 6시 25분이 되어서야 검찰청사 밖으로 나왔다. 21시간 만이다. 피의자 신문(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질문하고 진술을 듣는 절차)은 14일 밤 11시 55분에 끝났지만, 이 전 대통령과 변호인은 밤을 새워가며 신문조서 내용을 검토했다. 조사에 14시간 30분, 조서 검토에 6시간 30분을 쓴 셈이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조서 열람ㆍ검토에만 7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신문조서를 읽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일까.
물론 질의ㆍ답변 자체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몇 차례 불려 오기도 하는 일반 피의자나 정치인 수사에 비해, 전직 대통령 조사는 경호나 정치적 이유로 하루 만에 몰아서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조서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통령 조사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190쪽으로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에 해당한다.
또 통상 전직 대통령이나 거물 정치인 사건에는 여러 명의 변호사가 붙어 조사에 참여하기 마련인데, 피의자 쪽에 조금이라도 불리할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변호인 측에서 조서 표현을 수정해 달라고 일일이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 피의자는 피의자 신문에까지 변호사를 대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신문을 마친 후 조서 검토를 상대적으로 꼼꼼하게 하지 않는 편이다. 한 중견 법관은 “조서를 꾸민다는 표현이 있듯이, 검찰 역시 자기들에게 유리한 문장으로 조서를 쓰는 경향도 남아있다”며 “그래서 변호인이 모든 표현을 읽고 뉘앙스 차이까지 하나하나 고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식재판(공판)은 물증이나 증인이 재판 결과를 뒤바꾸지만, 구속영장 발부ㆍ기각을 좌우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는 신문조서가 유력한 판단 근거 중 하나로 활용되는 점도 큰 이유가 된다. 이번 조사에서 한밤중에 피의자 신문을 끝낸 이 전 대통령은 쉬지 않고 직접 조서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으로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했다”며 “검찰은 수정 요구를 조서에 충실하게 반영했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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