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靑, 국정 예산 생각했지
그런 식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이병기 “朴에 배신감 느낄 정도”
이병호 “개인 아닌 구조적 문제”
박근혜 정부 때 재직했던 국가정보원장 3명이 한날 한시에 재판정에 섰다. 박 전 대통령에게 특수활동비로 뇌물을 바친 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돈이 그렇게 쓰일 줄 몰랐다”며 박 전 대통령을 원망하는 듯한 얘기를 했다. “불법인 줄 몰랐다”며 자기들의 혐의를 부인한 것도 똑같았다.
남재준(74ㆍ2013년 3월~2014년 5월), 이병기(71ㆍ2014년 7월~2015년 3월), 이병호(78ㆍ2015년 3월~2017년 5월) 전 국정원장은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 성창호) 심리로 열린 국정원 특활비 상납 관련 첫번째 공판에 출석했다.
세 사람은 정보활동 용도로 받은 세금(특활비)을 상관(대통령)에게 사적으로 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처럼 특정 정권의 국정원장이 동시에 같은 혐의로 한 재판의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은 것은 헌정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때 재직한 두 명의 국정원장인 원세훈(대법원 계류)ㆍ김성호(최근 검찰 소환) 전 원장 역시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과 관련한 재판 또는 수사를 받고 있어, 최근 재직한 다섯 명의 국정원장들이 모두 형사처벌을 받게 될 상황에 몰렸다.
이들은 셋 다 그 책임을 박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에 돌렸지만 ‘핑계’만은 제각각 달랐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던 이병기 전 원장은 “그렇게 올려드린 돈이 제대로 국가 운영을 위해 쓰여지길 바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기대와 반대로 된 것이 안타깝다”며 “심지어 배신감까지 느낄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특활비는 고도의 정치적 활동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특활비와 관련한 규정이나 규범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용도(청와대 제공)에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알았다”고 항변했다.
남 전 원장은 변호인을 통해 “청와대가 국정에 사용할 예산으로 생각했지, 그 이외로 돈이 쓰일 줄은 몰랐다” 며 “잘못된 것은 진심으로 반성하지만 검찰 주장처럼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병호 전 원장은 “개인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고 항변했다. 그는 “2015년 3월 임명을 받아 그 다음달(4월)부터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원장이 됐다”며 “이것은 제가 부패해서가 아니고 다른 원장이 임명됐다면 그 사람이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월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받은 특활비 중 15억원을 기(氣) 치료, 차명 휴대전화 요금, 사저 관리비, 측근(문고리 3인방 등) 격려비 같은 곳에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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