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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 베트남] 베트남 여성, 결혼하면 호랑이 된다? 성장 동력이 된 ‘강한 생활력’

입력
2018.03.15 04:4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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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여성들의 삶

여성 경제활동 인구 남성과 비슷

국회의원도 여성이 27% 차지

기업 여성 임원 비율 아시아 1위

“많은 전쟁 거치며 강해질 수밖에”

사회주의 특성도 평등 강화 일조

1년에 두 번 여성의 날 기념하기도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명 장식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명 장식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

‘베트남 여자는 결혼하면 호랑이가 된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 이민 여성이 많은 한국과 대만은 물론이고 베트남 남자들 사이에도 베트남 여성들을 이야기할 때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결혼 전엔 양처럼 순하고 나긋나긋하다가도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자리를 잡으면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19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황건일(60) 호찌민시한국국제학교 이사장은 “그 말은 결국 생활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라며 “이 곳 여성들의 희생정신, 책임감, 독립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베트남 출신 아내를 둔 다문화 가정 남편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유리천장 있지만….’

베트남 여성들의 강한 생활력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14일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베트남 전체 경제활동인구는 5,340만명이다. 이 중 여성이 48.2%(2,573만명)를 차지했다. 남성(51.8%)과 별 차이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활동 인구(2,730만명) 중 여성 비율은 42%(1,157만명)이다. 응우옌 티 탄 후엔 하노이 베트남국립대 교수는 “소득(1인당 GDP 2,300달러)이 한국의 10분의1에도 미치지 않는 베트남이지만,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대단히 활발하다”며 “베트남 경제와 정치, 사회를 끌고 가는 주요 동력”이라고 말했다.

실제 아침 출근길 오토바이 물결 가운데 절반이 여성이고, 사무직 근로자의 경우 압도적 비율로 여성이 많다. 호찌민시에서 미국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인도계 출신의 아뚤 디싯(46)씨는 “고위직 절반이 여성이고, 이런 분위기는 다른 회사도 마찬가지”라며 “집안 일과 회사 일을 병행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 이 나라 전망이 밝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딜로이트가 지난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 기업들의 여성임원 비율은 17.6%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정치 분야 진출도 활발하다. 14기(2016~2021) 국회대표(의원) 494명 중 133명(27%)이 여성이다. 중앙인민위원회는 차기 국회에서는 이 비중을 35%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지 직원 37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국계 기업 인사책임자는 “승진에서는 물론 같은 업무에서는 임금 차이가 없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헌법(63조)으로 1992년부터 여성에 대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베트남 사회학 박사인 하노이 탕롱대 이계선 교수는 “사회주의 특성상 과거부터 맞벌이가 많고, 여성도 경제권을 가짐으로써 남녀 평등 개념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면서 “하지만 하노이와 호찌민시 일부 대도시로 국한되는 이야기이고, 지방으로 갈수록 유리천장이 두터워진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오전 호찌민 시내 한 꽃집 앞을 오토바이를 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였지만, 과거 천년 동안 유교 문화의 색채가 강한 중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부계사회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하지만 프랑스 식민,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면서 다시 여성들의 역할이 확대됐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2018-03-14(한국일보)
‘세계 여성의 날’인 지난 8일 오전 호찌민 시내 한 꽃집 앞을 오토바이를 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였지만, 과거 천년 동안 유교 문화의 색채가 강한 중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부계사회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하지만 프랑스 식민,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면서 다시 여성들의 역할이 확대됐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2018-03-14(한국일보)

한해 두 번, ‘여성의 날’

베트남 사회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지위는 모계사회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다. 응우옌 티 히엔 호찌민 인문사회과학대 한국학부 부학장은 “과거 수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남자는 나라를, 여자는 가족과 지역사회를 책임진다는 관념이 뿌리를 내렸다”며 “어려운 시절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머니가, 여성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트남에서는 자신보다 가족을 우선순위에 놓고 사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호찌민 시내에 살고 있는 팜 티 민 투이(60)씨는 “부모님(사망)과 남동생(55)을 뒷바라지 했다. 지금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산다. 내 삶에 대해 후회해본 적이 없다. 선조들도 모두 그랬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을 상대로 법률 자문을 해주고 있는 응우옌 흐엉(34)씨도 “월수입 3분의 2 이상을 부모님댁 주택 건축비로 보내고 있다”며 “결혼을 미룬 채 부모를 봉양하고 동생들을 공부시키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고 전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 같은 헌신적인 여성들을 기리기 위해 ‘국제 여성의 날’(3월8일), ‘베트남 여성의 날’(10월20일) 등 1년에 두 번의 관련 기념일을 두고 있다. 10월20일은 회원 규모 1,500만의 베트남 여성연맹 창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제 여성의 날은 한국의 밸런타인데이와 비슷하다. 남성들이 연인, 아내, 스승, 어머니, 직장동료 등 여성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외식을 한다. 현지 일간 뚜이쩨에 따르면 지난 8일 호찌민 시내 꽃가게의 꽃이 모두 동이 났고, 가격은 평상시보다 5, 6배까지 치솟았다. 이날 저녁 호찌민 시내 웬만한 식당들은 만원을 이뤘다.

‘베트남 여성’ 알아야 성공

외국에서는 베트남 여성들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결혼 이민자들의 고부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남녀 관계가 비교적 평등하고, 그로 인해 딸과 며느리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에서 평생을 산 베트남 여성들에게는 그 두 역할이 판이하게 다른 한국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 한국인과 결혼한 호찌민 인사대 레 히엔 안 교수는 “베트남 여성은 베트남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라며 “독립심 강하고 생활력 강한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가 뒷받침 된다면 이혼해서 베트남으로 돌아오는 여성들도 줄이고,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ㆍ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호찌민시내 아침 출근길 풍경. 마스크와 햇빛 가리개를 한 여성들이 남성들 틈에 끼어 오토바이로 출근하고 있다.
호찌민시내 아침 출근길 풍경. 마스크와 햇빛 가리개를 한 여성들이 남성들 틈에 끼어 오토바이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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