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결국 자국 영토 내 독극물 공격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며 제재 조치에 나섰다. 외교관 23명을 추방하고 고위급 회담도 중단하기로 했다.
메이 총리는 14일 의회에 출석, 지난 5일 영국 솔즈베리에서 ‘노비초크’ 독극물 공격을 받고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딸 율리아가 공격을 당한 책임은 러시아에 있다고 비판했다. 메이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비극적”이라며 푸틴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제재 조치도 내놨다. 우선 영국 내 “미확인 정보관”으로 판명된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한다며 일주일 내로 출국 명령을 내렸다. 메이 총리는 “수십년래 가장 큰 규모의 추방 조치”라고 밝혔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현재 영국 내 러시아 외교관이 58명이므로 약 40%가 추방되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보리스 존슨 외교장관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재개된 양국간 고위급 회담도 중단하기로 했고,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에 왕실과 장관급 이상 인사는 불참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다만 메이 총리가 지난 12일 러시아를 향해 ‘최후통첩’을 한 이후 정가와 언론을 통해 논의되던 영국 내 러시아 자산의 즉각 압류나 러시아 언론 활동 제재 등 초강경 제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영국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 소집해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에 협조를 구하는 등 국제사회 차원의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앞서 13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등이 영국과의 연대 의사를 밝히는 성명을 내면서 유럽을 둘러싸고 새로운 동서 대결구도가 형성될 조짐도 보인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영국의 외교관 추방 결정은 적대 행위”라며 “러시아와 영국의 관계 훼손 책임은 전적으로 현 영국 정치권에 있다”고 반발했다. 러시아 외교부도 공식 성명에서 “조만간 영국 행위에 대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영국의 해명 요구에 응하는 대신 동일하게 자국 내 영국 외교관 23명 이상을 추방하는 등 ‘비례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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