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이사ㆍ30대 사장ㆍ40대 회장…
서울시장 오르며 대선 주자 부상
경선서 박근혜 꺾고 대권까지
정권 재창출해 권력 물려줬지만
박 탄핵 낙마 이후 MB도 시련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출간한 자서전 제목처럼, 그의 일생은 절망이나 실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50대 국회의원, 60대 서울시장과 대통령까지, 그의 삶은 두 번이나 드라마(야망의세월ㆍ영웅시대) 소재로 쓰일 만큼 역동적인 성공신화 그 자체였다.
이 전 대통령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학으로 포항 동지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와 1961년 고려대 상대에 합격했다. 대학시절에는 상과대 학생회장으로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ㆍ3시위를 주도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6개월간 복역한 뒤 풀려났다.
본격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면서다.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눈에 들어 입사 5년 만에 이사, 12년 만에 35세 나이로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사상 유례 없는 초고속 승진으로 ‘샐러리맨 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27년간 회사 생활을 접고 1992년 정계에 진출한 후에도 그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1996년 총선에선 서울 종로에 출마, 4선 중진 국회의원 이종찬 의원과 청문회 스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선거법 위반으로 1998년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와신상담 끝에 2002년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당내 경선에서 5선의 홍사덕 의원을 눌렀고 본선에서는 당시 ‘386’(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선두주자던 김민석 민주당 의원을 물리쳤다.
서울시장 재임 중엔 ▦청계천 복원 ▦서울시 대중교통 환승체계 구축 ▦서울숲 조성 등 굵직한 성과물을 남겼다. 특히 청계천 복원의 성공은 그가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발판이 된다.
대선 도전도 거칠 게 없었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내 경선에서 물리친 후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마저 누르고 2007년 12월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과정에선 운도 따랐다. 참여정부 인기가 바닥에 떨어진 탓에 선거 사상 최다인 530만표 차이로 정 후보를 따돌렸고, 다스와 BBK 의혹 등이 불거졌지만 검찰이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손을 들어주며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재임 기간에는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등 위기가 적지 않았지만 2012년 박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낙마하고 지난해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본격적인 시련이 시작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다스 소유주 문제부터 군 사이버 댓글, 국정원 특수활동비 의혹 등 각종 비리가 꼬리를 물며 실체가 드러났고, 결국 그는 1년 전 박 전 대통령처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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