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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간 ‘온몸 마비’ 병마와 싸우며 제2 아인슈타인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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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간 ‘온몸 마비’ 병마와 싸우며 제2 아인슈타인 명성

입력
2018.03.14 18:1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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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에 근육 마비 루게릭병 진단

시한부 인생 속 우주론 등 업적

1000만부 팔린 ‘시간의 역사’로

대중적 인기 ‘과학자 아이콘’으로

“심리적 장애 가질 여유 없다”

휠체어 의지하면서도 낙천적 삶

갈릴레이 사망한 날 태어나

아인슈타인 생일날 우주 품으로

2014년 12월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의 영국 런던 시사회에 참석한 스티븐 호킹이 이혼한 전처 제인 와일드 호킹으로부터 입맞춤을 받고 있다. 주변 인물들은 영화에서 스티븐 호킹과 제인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다.로이터=연합뉴스
2014년 12월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의 영국 런던 시사회에 참석한 스티븐 호킹이 이혼한 전처 제인 와일드 호킹으로부터 입맞춤을 받고 있다. 주변 인물들은 영화에서 스티븐 호킹과 제인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이다.로이터=연합뉴스

“나는 이 병(루게릭병)에 대해 그리 많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실제로 병에 걸려 하고 싶은 일을 못 한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14일(현지시간) 향년 76세로 별세한 영국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스스로를 ‘장애의 벽’에 가두지 않았다. 장애를 비관한 적 있냐는 세간의 질문에 “신체적으로 장애를 앓는 사람은 심리적인 장애까지 가질 여유가 없다”고 맞받아칠 정도로 낙천적이었다. 199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스티븐 호킹 연구실에서 1년간 방문교수로 있었던 소광섭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종종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활동적으로 삶을 즐겼던 인물”이라고 회상했다.

호킹 박사는 1942년 현대 물리학의 창시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300주년이 되는 날 영국 옥스퍼드에서 의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7세에 옥스퍼드대에 입학했다. 이후 1962년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우주론과 일반상대성 이론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3년 21세에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Fㆍ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그에게 남은 시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충격이었다. 처형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되는 꿈까지 꿨다. 그러나 호킹 박사는 ‘적어도 나는 병 때문에 아프지 않다.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병마(病魔)와 싸워나갔다. 올해 76번째 생일까지 ‘시한부 인생’을 55년 연장해 오면서 ‘호킹 복사’를 비롯한 엄청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낙천적인 성격이 한몫했을 지도 모른다. 그는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를 맡았다.

1988년 발간한 ‘시간의 역사’는 ‘읽기 힘든 책’이라는 오명에도 40개 국어로 번역돼 1,000만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 책은 영국 일간지 더 타임 일요일판인 선데이 타임 베스트셀러 목록에 237주 동안 올라 최장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30돌을 맞은 미국 최장수 애니메이션 ‘심프슨가족’엔 그를 모델로 한 캐릭터가 네 차례나 출연했을 정도로 대중에게 호킹 박사는 ‘과학자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그의 활동은 과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호킹 박사는 핵무기 감축 운동에 앞장섰다. 2013년에는 ‘이스라엘의 대(對)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한다’는 편지를 이스라엘 대통령에게 보냈고, 항의의 의미로 같은 해 이스라엘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전쟁 범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인생은 굴곡도 많았다. 1995년 첫 번째 부인인 제인과 이혼했다. 이후 그를 돌보던 간호사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했다. 타박상을 입은 채 병원에 실려 오는 등 학대 의혹이 불거졌으나 피해자인 호킹이 수사를 거부하면서 경찰 조사는 더 진행되지 않았고, 결국 둘은 2006년 헤어졌다.

아인슈타인을 잇는 천재과학자로 불렸던 호킹 박사는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3월 14일(1879년), 본인이 한평생 이해하기 위해 힘썼던 우주를 향해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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