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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운동화가 런웨이에… ‘못난이 패션’이 뜬다

입력
2018.03.14 18:0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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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면 더 인기 ‘고프코어’

운동복, 힙색 등 뒤섞어 착용

촌스러움과 복고풍을 과장한 멋

명품서 출발, 대중 브랜드로 확산

발렌시아가의 고프코어 상품들. 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발렌시아가의 고프코어 상품들. 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투박해 보일수록 더 좋아.’

최근 패션업계에선 ‘못난이 패션’이 급부상하고 있다. 펑퍼짐한 오버사이즈 아노락(등산이나 스키에 쓰이는 방풍ㆍ방설을 위한 후드가 달린 상의)을 걸치고 등산화처럼 생긴 투박한 운동화를 신어야 ‘패션을 좀 안다’는 말을 듣는다. 명품 브랜드를 대충 걸치는 것처럼 보이려는 데서 시작한 ‘고프코어(Gorpcore)’ 트렌드가 점차 대중 브랜드로 확산되고 있다.

고프(Gorp)는 트레킹이나 캠핑 등 야외활동 중 먹는 고열량 견과류 믹스에 주로 들어가는 그래놀라(Granola), 귀리(Oat), 건포도(Raisin), 땅콩(Peanut)의 머리글자를 조합해 만든 단어로 아웃도어 용품ㆍ활동 등과 관련해 주로 쓰인다. 곧바로 산에 올라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아웃도어 패션의 특징을 강조했다는 의미로 고프코어라 불린다. 바람막이 점퍼, 플리스(양털이나 유사한 느낌의 직물) 집업 재킷, 등산화, ‘힙 색’ ‘웨이스트 백’으로도 불리는 패니백 등이 고프코어 룩의 대표 아이템이다.

발렌시아가의 고프코어 룩 점퍼. 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발렌시아가의 고프코어 룩 점퍼. 발렌시아가 인스타그램

패션업계에서도 고프코어는 아직 낯선 단어다. 유명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패션업체 관계자들 가운데서도 “고프코어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말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업계에선 고프코어를 수년 전 인기를 끈 ‘놈코어(Normcoreㆍ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나 ‘애슬레저룩(일상복으로 입어도 멋이 드러나는 운동복)’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놈코어가 아웃도어 의류에 일반적인 의미의 ‘멋’을 부여했다면, 고프코어는 아웃도어에 과장과 촌스러움, 복고를 뒤섞은 ‘멋’을 덧입힌다. 일상복과 부조화를 이루는 믹스 매치, 투박함을 과장한 표현으로 인해 ‘어글리 패션’ 또는 ‘대디코어’ ‘아재 패션’으로 부르기도 하고, 이러한 멋을 표현할 땐 ‘프리티 어글리(Pretty Uglyㆍ예쁘게 못생긴), ‘어글리 시크(Ugly Chicㆍ추하게 시크한)’ 등의 형용모순적 단어를 사용한다.

고프코어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에잇 세컨즈의 봄 신상품. 삼성물산 제공
고프코어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에잇 세컨즈의 봄 신상품. 삼성물산 제공

지난해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와 베트멍, 구찌, 버버리 등이 선보이기 시작한 고프코어 룩은 이제 10, 20대를 타깃으로 한 대중 브랜드로 확산하고 있다. 아웃도어 패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는 아웃도어 브랜드보다 젊은 세대를 겨냥한 캐주얼 브랜드나 여성 의류 브랜드가 좀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물산의 SPA브랜드 에잇세컨즈는 봄 신상품 점퍼, 셔츠 등에 고프코어를 접목한 상품들을 내놓았다. 체형보다 훨씬 큰 오버사이트 트렌치 코트와 헐렁한 바지ㆍ셔츠 등이 특징이다. LF가 수입하는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이자벨 마랑은 감각적인 멋을 살린 아노락 점퍼를 선보였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 관계자는 “10, 20대가 주 소비층인 브랜드는 올해 봄ㆍ여름 신상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고프코어 룩을 활용한 것”이라며 “젊은 세대는 패션에서도 재미가 있거나 개성이 넘치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복과 베트멍이 협업해 만든 스니커즈. 리복 홈페이지
리복과 베트멍이 협업해 만든 스니커즈. 리복 홈페이지

고프코어 열풍이 가장 뜨거운 분야는 신발이다. 과하게 튀지 않아 무난하게 도전할 수 있어서다. 발렌시아가의 스니커즈 ‘트리플 S’와 베트멍이 리복과 협업한 스니커즈 ‘인스타펌프 퓨리’ 등은 중고처럼 낡은 느낌을 주는 투박함에도 이를 착용한 지드래곤, 현아, 송민호 등 유명 연예인의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나이키, 아디다스, 휠라, 뉴발란스, 헤드 등 스포츠 브랜드들도 고프코어 룩의 신발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의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도 고프코어 룩의 스니커즈를 내놓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FnC 관계자는 “예전에는 투박한 디자인의 스니커즈가 한두 종류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며 “명품 브랜드의 과도한 고프코어 룩보다는 일상에서 소화하기 쉬운 제품을 중심으로 점점 관련 상품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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