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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한반도의 평화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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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한반도의 평화지수

입력
2018.03.14 14:4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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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당분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한국 특사단이 북한 수령 김정은의 메시지를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게 전하고, 트럼프가 김정은과 5월까지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화답한 소식을 듣고 퍼뜩 떠오른 생각이다. 올해 첫날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자기 책상 위에 놓여 있다고 위협하자, 트럼프는 즉각 자기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을 가지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작년에도 두 사람은 상대방을 ‘노망난 늙은이’, ‘병든 강아지’라고 비아냥거리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애꿎은 국민은 정말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간담을 졸였는데, 돌연한 반전(反轉)으로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만 ‘당분간’이라고 한정한 것처럼,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 공작’에 또 다시 놀아날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는 동안만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체념도 깔려있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까?

한반도에서 평화는 전쟁의 회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 평화는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국민이 양질의 생활을 영위하고, 국가가 튼튼한 안보를 보장할 때 유지되는 것이다. 마침 지난 2월 세계평화포럼(이사장 김진현)은 ‘세계평화지수 2017’을 발표했다. 평화지수는 정치(갈등, 내전, 쿠데타, 민주화, 인권 등), 군사ㆍ외교(전쟁, 분쟁, 군사화, 국제협약, 안보 등), 사회ㆍ경제(안전, 안정, 불평등, 빈곤, 삶의 질 등)에 관련된 각종 지표를 면밀히 측정하여 산출한다. 각국의 평화수준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세계평화지수는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가장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데이터이다. 이번 보고서는 195개국의 2016년 상황을 평가한 것이므로, 전세계의 현재 평화수준을 거의 다 커버한 셈이다.

‘세계평화지수 2017’에 따르면, 한국은 75.3점으로 70위이다. 정치에서 대통령 탄핵을 치르면서도 폭력사태 없이 정권을 교체하여 후한 점수를 받고, 사회ㆍ경제에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여 상위 평가를 받은 반면, 군사ㆍ외교에서 남북관계의 악화 등으로 점수를 많이 깎였다. 북한은 54.8점으로 163위이다. 군사ㆍ외교 지수는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등으로 최하위에 속하고, 빈곤과 억압 등으로 사회ㆍ경제 지수도 매우 나쁘다. 정치 지수는 중간 정도인데, 인권 침해 등이 극심해도 겉으로 갈등이 표출되지 않아 후한 점수를 얻었다.

세계평화지수에서 1등급에 속한 나라는 덴마크, 독일, 캐나다, 호주, 일본, 타이완 등으로, 군사적 긴장이나 정치적 위기가 적고 건실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 2등급 국가는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한국, 말레이시아 등인데,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미국을 핵심으로 한 안보동맹으로 얽혀 있다. 3등급 국가는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으로, 경제성장이 활발한 개발도상 국가들이다. 4등급 국가는 러시아, 인도, 방글라데시, 북한, 팔레스티나, 에티오피아 등인데, 대부분 경제적으로 저개발 국가들이다. 5등급 국가는 남수단,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예멘, 이라크 등으로, 국민소득이 적고 종족·종교 등의 분쟁이 심하다.

‘세계평화지수 2017’에 나타난 특징은 미국(83위), 중국(141위), 러시아(176위), 인도(154위) 등에서 보는 것처럼, 대국이 결코 평화롭지 않다는 것이다. 대국들은 보통 국내적으로 인종분쟁, 빈부격차 등이 심하고, 국외적으로 군사개입, 영토분쟁 등을 겪고 있다. 반면에 평화 상위 국가들은 대체로 인구가 적고, 종교ㆍ언어ㆍ종족이 단일하거나 조화를 이루며, 교육ㆍ소득ㆍ복지 수준이 높고, 주변지역이 안정되어 있으며, 민주정치가 작동한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면 평화 하위 국가에 속한다.

남북한은 평화수준에서 아주 큰 격차를 보인다. 일인 독재 아래 인민을 빈곤에 빠트리며 강행하는 북한의 군사제일노선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전체의 평화수준을 높이고 남북한의 평화격차를 줄이려면 북한이 경제제일노선으로 선회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의 민주화와 사회의 균등화를 이룩해야 한다. 처음으로 성사될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대 전기(轉機)가 되기를 기원한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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