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의 ‘재팬 패싱(일본 배제)’에 대한 초조함의 발로일까.
만나는 인사에 따라 의자 높이에 차등을 둬 ‘의자 외교’를 한다는 비판을 받은 아베 신조(63ㆍ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이번에는 한국과 같은 의자에 앉았다. 13일 남북, 북미 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도쿄 총리 관저를 찾은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다. 앞서 아베 총리는 우리 측 인사와 면담 때마다 자신보다 낮은 높이의 의자를 접견용으로 내놔 ‘외교 홀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찾은 문희상 민주당 의원을 만났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아베 총리는 자신의 것보다 높이가 낮은 의자를 접견용으로 내놨다. 높이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차이가 났다. 문 의원이 앉은 의자는 분홍색 바탕 민무늬 디자인인 반면 아베 총리 의자는 남색 바탕에 금색 꽃무늬가 그려진 디자인이었다. 국내에서는 당장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다.
아베 총리의 ‘의자 놀이’는 계속됐다. 그는 지난 해 12월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비롯해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났을 때도 문제의 의자를 접견용으로 등장시켰다. 같은 해 6월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가 유일한 예외 사례였다. 정 의장 측이 아베 측에 강력히 항의하며 의자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문제의 금색 꽃무늬 의자에 앉기 시작한 건 작년 4월부터다. 그 전까지는 자신도 분홍색 민무늬 의자에 앉았다. 정확한 의자 교체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다. 확실한 점은 아베 총리의 ‘의자 외교’ 희생자가 우리나라만이 아니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부 장관,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과 만났을 때도 혼자만 화려한 무늬가 장식된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서 원장과 만난 자리에서는 달랐다. 아베 총리는 이날 서 원장에게 자신과 같은 금색 꽃무늬 의자를 제공했다. 서 원장 측에서 먼저 교체를 요청한 것인지, 아니면 관저 측에서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의자를 바꾼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측만 무성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꽃무늬 의자 접견’이 우리 정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초조함을 나타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대북특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 북미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이끌어 낸 우리 정부의 ‘재팬 패싱’을 의식한 계산적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1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홍 대표, 강 장관, 문 의원 접견 모습과 서 원장 접견을 비교한 사진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아베 총리가 이번에는 ‘의자 장난’을 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상황이 긴급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아베 총리가 제공한) 의자가 정상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이날 서 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일본도 높이 평가한다”며 우리 정부와의 대북 문제에 대한 공조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서 원장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시작한 한반도 평화의 물결이 좋은 흐름으로 이어지기 위해 한일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를 전한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미사일 해결을 위해 한일 정상간 의지와 긴밀한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원모 기자 ingodzo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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