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강수 둘 가능성도 제기
다시 터진 ‘사학 스캔들’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올 9월을 전후로 퇴진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리고 있다. 지난 5년간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 ‘사실상의 변형된 대통령제’란 평가를 들을 만큼 독주체제를 굳혀 왔지만 비리 스캔들로 낙마 위기에 빠진 것이다. 아베 총리의 거취는 그 파장이 일본 국내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무성 특혜 문서조작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이목이 쏠려있다.
13일 일본 정가에 따르면 아베 총리와 집권 자민당은 다수의 카드를 놓고 정국 돌파를 모색 중이다. 일단 현재 선택한 건 정면돌파다. 재무성이 총리 부부와 가까운 사이로 의심받는 모리토모(森友)학원에 국유지 매각 특혜를 줬고 이를 은폐하려고 서류까지 조작했지만, 모두 실무자들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장관도 “일부 직원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진행중인 수사에 재무성이 협력할 것”이라며 부총리가 사임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가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건 정치적 동지인 아소가 사퇴하면 정권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다. 스가 장관과 함께 아베 정권의 두 기둥인 아소 부총리가 무너지면 사태가 잠잠해지기는커녕 총리 책임론이 더욱 힘을 받을게 틀림없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아소 부총리는 자민당내 제2파벌(의원 59명)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내칠 경우 9월 총재 선거 때 3연임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아베 총리 의도대로 흘러갈지는 불투명하다. 정권 유지를 위해 책임을 회피할수록 지지율이 하락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소 부총리를 보호하려고 재무성 관료들에게만 책임을 씌우는 전술을 고집하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할 조짐이다. 50%를 넘던 지지율이 40%대 중반으로 급락했는데, 30%대까지 내려가면 당내 주요 파벌들이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차기 총리를 향해 현재의 아베 지지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선 여론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여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당장 총리 사퇴론이 제기된다.
일부에서는 자민당의 주요 파벌들이 9월 총재 선거를 앞둔 특정 시점에 ‘아베로는 안 된다’며 차기 리더십을 향한 합종연횡을 다시 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베 총리의 위세에 눌려 5년간 사라졌던 ‘파벌정치’가 다시 역할을 찾게 되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ㆍ제4파벌 대표) 전 외무장관이 최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이런 연유다. 그는 아베 정책을 계승하면서 온건성향이다. 아베 총리가 물러간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범 주류파’가 교통 정리에 나선다면 기시다 전 장관이 적임자라는 얘기다.
물론 9월 총재선거에 이르기 전에 아베가 스스로 퇴진하는 급변사태도 배제할 수는 없다. 개헌과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독식하려는 아베 총리가 지지율 하락이나 불어나는 국민적 시위에도 불구하고 돌파를 시도하다 결국 조기 퇴진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는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의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대화 국면이 9월까지 지속될지 아니면 다시 한반도 정세가 급랭할지 여부에 따라 일본 민심이 동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북 압박만 추구해온 아베 정권이 한반도 주변의 평화무드에서 소외된다면 지지율이 급락하겠지만, 또다시 대립구도가 복원되면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 대국화를 추구해온 아베 총리가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 아베 총리만큼 개헌의 절실함이나 군사대국화를 향한 우익적 숙원을 밀어붙일 유력주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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