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지난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서 이성부 시인의 말처럼 기다림마저 잃었는데도 봄이 온 것이다. 우리 경제의 봄날도 그렇게 왔다. 얼어붙은 내수경기나 구조적 저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여러 지표들은 경제가 겨울의 긴 터널을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봄의 전령은 성장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2%에 이어 금년에도 3.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189개 회원국 중 111등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선 만큼 3%대인 것도 대견하다. G20와 OECD 두 그룹에 모두 속한 G7과 호주 등 11개 나라로 좁혀보면 3%를 기대하는 건 우리나라와 터키뿐이다. IMF 근무시절 이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률이 2.6%에 그칠 것이라는 사무국의 주장을 3%가 넘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다른 참석자들은 우리는 2%만 해도 좋겠는데 욕심도 많다는 표정이었다.
기업들도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반도체 업종은 이익이 두 배로 늘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을 제외한 모든 업종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함께 개선되고 있다. 90년대 후반과 같은 반도체 경기로 인한 착시현상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수출은 전년 대비 15.8% 늘어나면서 여전히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일각에서는 수출 못지않게 수입이 크게 늘어난 점을 우려하지만, 오히려 바람직한 변화로 보아야 한다. 수입물가가 내렸고 내수도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도 늘어나야만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다른 나라의 시기와 견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
봄날에도 꽃샘추위가 있고 비바람도 몰아친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한 고통도 만만치 않다. 미국발 보호무역주의는 봄날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가장 큰 변수이다. 혈맹인 우리에게 불리한 조치를 취한다는 볼멘 인식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거센 움직임이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가 최근 몇 년간 계속 GDP의 7%를 넘는데 뿌리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미국은 적자가 GDP의 2.4%에 달했던 점을 감안해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도 나서야겠지만 기업이 미국국민의 마음을 얻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에 당면할 가능성이 크다. 80년대 후반 일본도 그랬다. 1986년 GDP의 4.1%라는 기록적인 경상수지 흑자 때문에 미국이 주도한 플라자 합의로 엔화의 가치가 3년 만에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지독한 일본 기업은 각고의 노력으로 경비절감을 하여 수출시장을 크게 잃지 않고 위기를 극복했다. 문제는 기업을 도와준다고 정책금리를 5%에서 2.5%로 깎아 준 것이 화근이었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버블경제의 형성이었다. 6대도시 상업용 지가는 5년간 2.5배 이상 폭등했고, 아파트 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과도한 유동성을 도외시하고 기업의 어려움 해소나 일자리를 만들 욕심으로 정책금리 대응을 적절하게 하지 못한다면 일본과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 20년을 송두리째 날린 것은 버블경제가 붕괴되면서 발생한 부실기업을 제때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설, 부동산, 유통 등의 산업에 낀 거품은 두고두고 일본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면 성장과 일자리를 모두 잡아먹는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STX와 성동조선에 대한 최근 결정은 과거 일본과는 차별화된 행보의 시작이다. 금호타이어와 한국 GM 그리고 대우조선도 일관성 있는 원칙을 가지고 결단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
봄이 되면 다소 춥더라도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한다. 아직도 춥다고 불만 피우다가는 산불이 나서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날릴 수 있다.
최광해 우리금융경영연구소 대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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