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심부의 중도좌파 정당 쇠퇴
계급에 호소하는 일의 한계를 노정
민주당은 ‘중도좌파’ 이름이 두렵나
지난 4일 정당정치의 현재를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유럽에서 둘 있었다. 하나는 이탈리아 총선인데, 집권 중도좌파가 참패했다. 23%밖에 득표를 하지 못했다. 기존 체제를 비판하는 신생정당 ‘오성운동’은 32%의 득표로 1당이 되었다. 지난해 프랑스 총선과 대선에서 우파와 중도좌파로 대표됐던 기존 정치지형을 신생 정당이 뒤엎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EU를 지지하기에 오성운동과는 다르지만, 프랑스에서도 2차 대전 이래 가장 중요한 정당의 하나였던 중도좌파 사회당이 거의 몰락했다.
두 번째 사건은 독일에서 일어났다. 중도좌파 사민당 당원들이 투표를 통해 메르켈의 보수 연합과 대연정을 구성하기로 한 것이다. 작년 가을 총선에서 보수연합은 1당이 되기는 했지만 33%의 득표를 획득하는 데 그쳤고, 처음에 자민당ㆍ녹색당 등과 연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줄여서 그로코(GroKoㆍGroße Koalition)라고 불린 대연정, 곧 우파와 중도좌파 사민당의 연합정부는 독일에서 몇 십 년 동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균형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 요인이었는데, 이번엔 총선 뒤 사민당이 선뜻 대연정에 찬성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다름 아닌 중도좌파 사민당의 깊은 침체였다. 득표율이 겨우 20.5%에 머물렀으니, 놀랄 일이다. 또 놀랄 일은 극우적인 독일 대안당이 12.6%를 차지하면서 3당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보수연합과 대연정을 계속할 경우 정체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커졌지만, 연정을 거부할 경우 다시 총선이 실시될 수밖에 없다는 불안 앞에서 결국 다수는 연정에 동의했다.
EU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세 나라,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가 비슷하게 흔들리고 있다. 좌파와 스스로를 구별하면서 집권했던 중도좌파 세력이 쇠퇴하거나 쪼그라드는 것이 결정적이다. 반면에 극우는 크게 성장했다. 근대 이후 정치적 이념을 구성한 기준인 우파와 좌파라는 구별이 흔들리면서, ‘포퓰리즘’으로 여겨지는 정치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들을 간단히 ‘포퓰리즘’으로 치부하는 것도 편의주의일 수 있다. 나름대로 그들도 ‘대안’이기 때문이다. 좌파가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는 있겠지만, 개인화 과정이 확대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집단으로서의 계급에 호소하는 일은 제한된 효과밖에 가지지 못할 듯하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트럼프에 굴욕을 당한 사건도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중도좌파 성향의 정당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무슨 까닭인가? 유럽의 경우 특히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이 정치 지형을 결정적으로 뒤흔들면서 극우의 확장을 초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을 막으려는 국가주의 정책은 유럽이 2차 대전 이후 표방한 민주주의적 가치와 복지체제의 보편적 확대를 철회하는 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가치들을 옹호하는 중도좌파에게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거기에 다른 부정적 요인들이 늘어난다. 보호주의는 강화되고, 좋은 부동산을 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격은 폭등하며, 기술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르다. 젊은 세대의 높은 실업률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권하거나 연정을 구성했던 중도좌파의 쇠퇴는 앞으로 더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혼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것을 제대로 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은 자신을 ‘진보’ 또는 심지어 ‘좌파’라고 지칭하고 있다. 당연히 보수는 그걸 빌미 삼아 민주당을 ‘좌파’라고 부르며 나쁜 색깔을 칠한다. ‘중도좌파’를 감추고 진보나 좌파를 내세우는 일은 해로울 뿐만 아니라 착각이고, 속임수이다. ‘진보’는 모호한 우월감이나 기대를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미국 민주당이 자신을 ‘진보’라고 부르지만, 그나마 그들은 자신을 ‘리버럴’로 부르기에 큰 오해는 없는 셈이다. 좌파라면서 제 이름을 쓰지 않는 당도 책임이 있다. 민주당과 지지자, 왜 중도좌파라는 걸 두려워하는가?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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