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치과라고 하면 ‘윙’하는 소리를 떠올리게 된다. ‘핸드피스’라는 의료기구로 충치를 갈아내는 소리인데, 많은 치과에서 이 핸드피스를 소독도 하지 않고 다수의 환자에게 재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피와 침이 내 입 안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신경치료용 파일 비위생과 재사용만큼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달 28일 한 포털사이트의 치위생사 카페에는 ‘멸균 궁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신입 치위생사라고 밝힌 A씨는 “버(Burㆍ드릴 날처럼 핸드피스 앞에 달아 치아를 깎는 부품)를 물로만 헹구고 통에 담아뒀다가 다시 쓴다. 핸드피스 세척하는 것도 못 봤다”고 주장했다.
치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B씨는 “핸드피스나 버는 하루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소독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치위생사 C씨는 “치과 진료대에 앉았을 때 핸드피스 앞부분을 빼놓지 않았다면 앞의 환자에게 사용한 것을 그대로 쓰는 걸로 봐도 된다”고 덧붙였다.
핸드피스는 환자의 혈액과 타액에 노출되는 만큼 멸균처리 대상이다. 치과 치료를 받는 환자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 의료진은 환자가 어떤 감염성 질환을 앓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멸균은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치위생감염관리학회의 ‘치과진료실 감염관리 지침서’를 보면 핸드피스는 고위험 기구로 분류돼 사용 후 ‘세척→윤활제 도포→공회전으로 윤활제 제거→멸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증기 고온멸균이나 저온가스멸균은커녕 윤활제로 핸드피스 내부의 이물질도 제거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실정이다.
핸드피스 업체가 수리를 의뢰 받은 핸드피스를 분해한 사진은 비위생적인 치과 치료 실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덮개 속에는 이물질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윤활제는 검고 진득하게 변해 있다. 업체 관계자는 “치아 가루, 침, 혈액 등이 윤활제와 섞여 떡이 된 것”이라며 “수리 들어오는 제품 상당수가 이런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핸드피스가 멈출 때 잠깐 반대 방향으로 도는데, 이 때 핸드피스 몸통 안으로 빨려 들어간 이물질이 회전하면서 흘러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핸드피스의 비위생적인 관리는 오랜 관행이다. 2006년 5월 MBC ‘PD수첩’이 문제를 고발하면서 잠시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당시 ‘PD수첩’은 감염성 심내막염으로 대수술을 받은 충주의 김모씨, 병원성 세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사망한 인천의 최모씨 사례를 다뤘다. 환자의 가족들은 ‘치과 치료 후 세균에 감염됐다’고 주장했지만 담당 의사들은 ‘환자의 면역력 탓’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고, 프로그램은 치과 위생상태를 조명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는데도 열악한 치과 위생상태는 별반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치과 원장 D씨는 “치과에서 C형 간염이나 심지어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해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으니 경각심을 크게 갖고 있지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치과 원장은 “환자가 바뀔 때마다 멸균한 핸드피스를 준비하려면 핸드피스 수십개와 멸균기를 사는데 수천만원이 든다.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런 돈을 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치과의 위생상태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공감한다”면서 “핸드피스를 멸균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것은 의료법상 비도덕적 진료행위 등에 해당돼 해당 의료진에게 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치과 원장 D씨는 “수 년간 정부에서 핸드피스에 대한 위생 점검을 한 기억이 없고, 행정처분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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