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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부추기고 시간 때우기… ‘빗나간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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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부추기고 시간 때우기… ‘빗나간 성교육’

입력
2018.03.13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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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가 수준 성교육 표준안’

1년여간 손 봤지만 다시 도마에

男 강하고 모험적, 女 민감ㆍ다정

이분화시킨 고정관념 여전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화 했지만

교사들 “계획서만 쓰고 다른 진도”

페이스북 '스쿨미투' 페이지. 온라인 캡처
페이스북 '스쿨미투' 페이지. 온라인 캡처

‘약 30년 전인 초등학교 4~6학년 때 일입니다. 저는 가슴이 빨리 자란 편이라 같은 반 남자애들이 가슴을 쥐거나 만지는 일을 많이 당했지만, 담임교사는 ‘남자애들은 호기심이 많으니 네가 조심해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페이스북 스쿨미투 페이지)

‘최근 다니던 직장 상사가 복도에서 껴안는 일을 강요하거나 자기가 잘 해줄 테니 같이 자자고 말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같은 부서 남직원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그러실 리 없다’며 단언하던 답답했던 기억이 있네요.’(페이스북 미투 대나무숲)

자신이 당했던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온라인 ‘미투’(#Me Too) 글이다. 언급된 피해 시점은 최근부터 1980년대까지 30년 이상의 시간을 오가지만, 성폭력 당시 상황과 주변인들의 대응 방식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로 ‘당국의 부실한 성교육’을 꼽는다. 수십년 간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면서 비뚤어진 시각과 행태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은 성차별적 시각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잘못된 성폭력 예방ㆍ대처법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12일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사회 전반에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제시하고 있는 ‘국가 수준의 성교육 표준안’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표준안은 한국 교육현장의 성교육 부실이 끊임없이 지적되자 교육부가 내놓은 일종의 성교육 가이드라인. 공식 성교육 교과서가 없는 대신 현재 초ㆍ중ㆍ고교의 성교육 담당 교사들은 이 표준안을 기반으로 한 지도서 등을 활용해 수업을 하게 돼 있다. 2015년 첫 공개 당시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성폭력을 예방하려면 단둘이 여행을 가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뭇매를 맞자, 교육부는 1년여간 수정 작업을 했다.

하지만 바뀐 표준안 역시 여전히 성 고정관념과 그릇된 예방법 일러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사들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받은 ‘고등학교 성교육 표준안 수정자료’에는 남성성을 ‘강하고 모험적이고 경쟁적’, 여성성을 ‘민감하고 말 많고 다정한’ 등으로 이분화 하는가 하면, ‘이성과 단 둘이 있을 때 성적 충동이 일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가라’ ‘건전한 이성교제를 위해선 공개적인 장소에서 만나라’ 식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폭력 예방의 초점이 ‘피해자의 확실한 거절’에만 맞춰져 있는 점도 문제다. ‘성적 강요 행동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싫은 느낌이 들 때 확실히 싫다고 말한다’(초등), ‘단호한 자세와 거절 연습은 반복적으로 한다’(고등) 등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거절, 금욕, 절제 등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은 ‘성폭력은 피해자가 여지를 주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피해자 유발론적 인식을 심어준다”고 강조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당국이 정해놓은 성교육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 ‘가짜 계획서’를 쓰는 일도 흔하다. 교육부는 보건교육 등과 연계해 초ㆍ중ㆍ고 학년 별로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실시하도록 지침을 주고 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게 교사들의 목소리다. 서울의 한 고교 보건교사는 “계획서에는 기술ㆍ가정, 창의적체험활동, 과학 등 과목시간을 활용해 성교육을 하겠다고 쓰지만 실제로는 원래대로 진도를 빼는 교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성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위원장은 “잘못된 성교육이 학교 성폭력은 물론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폭력과 차별적 시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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