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전부터 금지’ 외 규제 없어
한 권에 수천만원 내도 못 막아
주요 선거 때마다 정치자금 모금 수단으로 악용되는 출판기념회가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행법상 출판기념회는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금지된다. 역산하면 올해는 15일 이후 열 수 없다. 정치인들이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에 목을 매는 이유다.
이 같은 시기 조항이 출판기념회를 규제하는 유일한 법규다. 금지기간 이전에는 현역 정치인이나 정치 지망생 모두 판매 액수나 수량에 제한 없이 행사를 열 수 있다. 더구나 회계장부를 남기거나 신고해야 할 의무조차 없다. 책 한 권을 팔면서 수천만 원을 받아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회 한 번에 1억원 이상은 챙긴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이에 출판기념회를 양성화하는 대신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15년 출판기념회 축하금을 뇌물로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오면서 정치권에도 자성의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2014년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횟수를 4년 임기 중 2회로 제한하고 국정감사, 정기국회, 선거 기간에는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후속조치로 당 차원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준칙안도 내놓았지만 이후 추동력이 떨어져 흐지부지됐다.
그 무렵 더불어민주당 또한 출판기념회 도서를 정가판매하고 수입과 지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의원 윤리실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그뿐이었다. 또 정치권은 20대 국회 들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출판사가 책을 정가에 판매하는 것만 허용하는 내용의 출판기념회 개선보고서를 냈지만 반짝 호응에 그쳤고 입법에는 이르지 못해 다시 공염불이 됐다.
이처럼 개선안이 매번 국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이, 선거철마다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12일 “의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려는 생각을 버려야 출판기념회를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다를 바 없다는 탄식이다.
보다 못한 중앙선관위가 ▦출판사가 직접 정가로 판매하는 것 외에 일체의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출판기념회를 열 때는 개최 2일 전까지 선관위에 신고하며 ▦이를 위반할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등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데다, 일괄적인 규제로 인해 또 다른 불법자금 루트를 이용하는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 신인들이 홍보와 소통에 나서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며 “이들에게는 좀 더 유연한 기준을 적용하되 현역 정치인에게는 요건을 엄격히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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