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재학 시절 재능을
이 前 장관이 알아보고 발굴
딸과 정 작가 대학동기 인연
1주기 추모행사 열려던
남편 김병종 교수 대신
‘정미경론’ 쓰고 전시 추진
“슬퍼하는 사람을 달랠 수 있는 건, 더 큰 슬픔을 겪은 사람뿐 아니겠나.”
이어령(84) 전 문화부 장관이 김병종(65)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를 위로하며 한 말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김 교수다. 그의 아내인 소설가 정미경 작가는 지난해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더 큰 슬픔을 겪은 사람’은 이 전 장관. 2012년엔 큰딸인 이민아 변호사를, 2007년엔 이 변호사의 큰아들인 손자를 잃었다. 상처(喪妻)의 슬픔이 연이은 참척(慘慽)의 슬픔보다 크기가 작다고 말할 순 없을 터. ‘그 슬픔 헤아리는 사람 여기 있으니, 이제 그만 헤어나라’는 것이 이 전 장관의 참마음일 것이다. 김 교수는 12일 전화통화에서 “선생님(이 전 장관) 부부의 지극하고도 명확한 위로 덕에 고통에서 조금씩 놓여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정미경 재평가는 내가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화여대 재학 시절 21세 정 작가의 문재(文才)를 알아보고 발굴한 이가 이 전 장관이었다. “그 때 선생님은 이대 국문학과 교수이자 문예지 ‘문학사상’의 초대 주간이었어요. 교내 문학상을 여러 번 탄 정 작가를 불러 ‘너는 타고난 작가다. 몸이 약하니 결혼 같은 건 하지 말고 글쓰기에 전념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답니다. 정 작가는 스승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죠. 졸업 직후 저와 결혼해 아들 둘을 챙기느라 10년 넘게 글을 쓰지 못했으니까요. 저와 정 작가를 선생님이 언젠가 우연히 봤대요. ‘저 녀석 때문에 미경이가 빛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구나!’ 아쉬워하셨답니다(웃음).”
정 작가와 이 변호사는 이대 영문학과 78학번 동기이자 친구였다. 이 전 장관은 이 변호사가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 정 작가를 딸처럼 아끼신 것 같아요. ‘김 교수가 정 작가 재평가 문제 때문에 안달복달하면 정 작가의 문학 세계가 부부의 일로 쪼그라드네. 평가는 문단에 맡기고 붓을 다시 들게. 정 작가는 관에서 수시로 불려 나올 것이네. 육신의 수명은 짧았으나 문학은 길 것이니, 초초해하지 말게.’ 그 말씀이 힘이 됐어요. 직접 ‘정미경론’을 쓰고 영인문학관에서 정미경 다시 읽기 모임이나 기획전시 같은 행사도 열겠다고 하셨죠.” 이 전 장관이 40년 전 정 작가와 맺은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은 이 전 장관과 부인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가 세운 곳이다.
김 교수는 정 작가의 1주기(1월18일)에 추모 전시를 열려 했다. 생전에 문단에서도, 독자들에게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아내가 잊히는 게 두려워서다. 지난해 말부터 급하게 준비하느라 아등바등한 그를 이 전 장관이 눅였다. “‘애도는 결국 산 자를 위해 하는 것인데, 김 교수는 왜 스스로를 괴롭히기만 하는가. 오래 작별한다고 떠난 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네’라는 말씀을 듣고 정신이 들었어요. 정 작가의 유작 장편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문학동네)과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창비)를 내는 정도로 올해는 흘려 보내기로 했지요.”
“하늘이 천재는 빨리 데려간다고 하네. 정 작가가 천재였다는 뜻이지.” “선생님은 안 데려가시지 않습니까.” “나는 천재가 아니라는 얘기지.” 소중한 정 작가를 잃은 이 전 장관과 김 교수가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선생님 내외가 우리 부부를 종종 불러 밥을 사 주셨어요. 안타깝게도 넷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네요. 정 작가가 30년은 더 살 줄 알았거든요…”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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