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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퇴근 빨라졌지만 업무 강도는 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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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퇴근 빨라졌지만 업무 강도는 세졌다

입력
2018.03.12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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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하던 회의 1시간에 끝내

오후 5시30분엔 모든 컴퓨터 ‘OFF’

야근 시간 줄고 업무 효율 높아져

생산성 향상이 개혁 성패 관건

신세계프라퍼티 마케팅팀이 회의 진행 시간을 30분으로 미리 정해놓고 회의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신세계프라퍼티 마케팅팀이 회의 진행 시간을 30분으로 미리 정해놓고 회의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1. 지난 9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오전 10시가 되자 이갑수 대표 등 주요 임원들이 회의실에서 몰려 나와 각자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갑수 대표는 올해부터 임원회의 시작 시간을 오전 9시로 고정하고 전 임원에게 “모든 회의 시간은 1시간 이내로 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 임원은 “처음엔 황당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회의 시간 단축으로 업무 효율이 높아지자 임원들도 부하 직원들에게 회의 시간을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2. 신세계 본사에 근무하는 김모 대리는 지난달 말 부서장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날 마쳐야 할 업무를 끝내지 못해 모든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오후 5시30분에 임박해 부서장에게 뒤늦게 야간근무 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주 35시간 근무 정착을 위해 올해부터 ‘컴퓨터 셧다운’ 제도를 운영 중이다. 김씨는 “야근이 많은 부서의 장은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직원들의 야근신청서를 꺼린다”며 “하지만 외부 미팅 때문에 불가피한 야근을 신청했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솔직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이 지난 1월1일부터 ‘주당 35시간 근무 제도’를 도입한 지 두 달여가 지났다. 그간 어느 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신세계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체로 세간의 시선은 “일찍 퇴근해 좋겠다” “얼마 가지 못할 것” 등의 부러움과 우려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신세계는 35시간 근무의 진짜 목적은 직원 복지보다 생산성 향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근무시간을 도리어 줄이는 극단적인 충격요법을 써서라도 직원들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이를 위해 신세계 내부에선 치열한 근무ㆍ조직 문화 혁신의 몸부림이 진행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도 적지 않다.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노동생산성을 우리 경제의 근본 한계로 지적 받는 상황에서 재계도 신세계의 ‘역발상 실험’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흡연실이 폐쇄돼 있는 모습. 이마트는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낮 근무시간 동안 사내 흡연실을 폐쇄해 놓고 있다. 이마트제공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 흡연실이 폐쇄돼 있는 모습. 이마트는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낮 근무시간 동안 사내 흡연실을 폐쇄해 놓고 있다. 이마트제공

감지되는 변화들

11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주 35시간 근무 제도 시행 후 직원들의 야근 비율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매일 100명 중 32명 꼴이던 이마트 직원의 야근비율(32%)은 올해 2월말 현재 0.3%로 거의 ‘야근 프리’ 회사가 됐다.

이는 신세계의 엄격한 ‘야근 방지책’ 때문이다. 오후 5시30분이면 일제히 꺼지는 PC를 다시 켜려면 부서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세계 관계자는 “야근을 허락하는 부서장의 결제 품의서 등은 인사과와 공유돼 향후 부서장 인사평가 시 주요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고 말했다.

야근을 부르는 단골 원인이 됐던 회의도 대폭 줄었다. 이마트는 팀별 회의실 사용 시간이 지난해 2시간에서 올해 1시간으로 줄었다. 불필요한 회의를 열지 말라는 본사 방침에 따라 팀별 회의실 이용 횟수도 평균 주 3회에서 1.5회로 반토막 났다. 이마트 한 과장은 “회의 안건과 의견 등은 미리 온라인 채팅방 등에서 사전 조율하는 식으로 회의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진 월요회의, 파워포인트

매주 금요일 열리는 이마트 임원회의는 재계에서도 회의 시간이 길기로 유명했다. 오전 8시쯤 시작돼 점심시간이 다 돼 끝나기 일쑤였고, 오후에야 내려지는 임원의 지시에 부하 직원들의 금요일 야근도 잦았다.

하지만 요즘 신세계에서 회의 소집은 ‘금기어’에 가깝다. 한 임원은 “한 번 하면 2~3시간씩 이어지던 회의는 물론, 매주 월요일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안부를 묻던 회의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전했다. 5시 퇴근을 위해선 그런 회의에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 말 신세계 그룹은 전 계열사에 “35시간 근무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문화를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따라 그간 관행적으로 만들던 각종 보고 문서도 자취를 감췄다. 임원 보고용으로 공을 들였던 ‘파워포인트’ ‘워드’ 문서 보고서가 사라진 자리를 구두 보고와 문자 메시지 보고가 대신하고 있다. 이 역시 ‘예전처럼 보고서를 만들면 오후 5시 퇴근이 불가능하다’는 공감대에 의해 아직까지 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마튼 한 직원이 오후 5시에 퇴근 한 후 사내 어린이집에 맡겨 놨던 자녀들을 찾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이마튼 한 직원이 오후 5시에 퇴근 한 후 사내 어린이집에 맡겨 놨던 자녀들을 찾아 집으로 향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제공

파격실험 순항할까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무조건적인 야근금지 조치다. 일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부서와 매장 근로자들은 낮 시간에 휴식 시간을 줄이는 등 개인적인 노력을 해도 주 35시간 근무제를 지키기 어렵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 부러워하는 야근 금지 조치가 오히려 불편하다는 일부 직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도 감지된다.

업무상 외부인과의 저녁 약속이 잦은 부서에선 오후 5시 퇴근 이후 ‘시간을 때우며’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촌극도 빚어지고 있다.

이마트 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정해진 퇴근 시간을 맞추기 점심도 못 먹고 일할 때가 있다”며 “지금처럼 제도가 계속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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