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
후보군 정해 놓고 사전 평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는 게 빈번한 국내 금융회사들과 달리 외국계 은행들은 ‘셀프 연임’이 다반사임에도 구설수는 거의 없다. 오로지 실적으로만 평가 받는 문화와 낙하산 인사가 개입할 수 없는 CEO 승계 프로그램 덕분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 CEO 중 10년 이상 조직을 이끈 이는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유일하다. 미국만 해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14년차), 존 스텀프 웰스파고 CEO(12년차),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그룹 회장(13년차) 등 10년 이상 경력의 CEO가 많은 것과 대비된다.
하 전 행장은 씨티은행을 2004년부터 11년간 이끌었다. 이후 CEO에 오른 박진회 행장 역시 지난해 연임(3년 임기)에 성공, 장수 경영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5년 SC제일은행장이 된 박종복 행장도 올해 초부터 두 번째 임기(3년)에 들어갔다.
두 은행 모두 행장 후보를 선출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행장이 참여한다. 현 행장의 연임이 안건일 경우에만 의결권을 갖지 않는 구조다. 그럼에도 두 행장이 잡음 없이 연임에 성공한 것은 내부 권력다툼이나 외부 낙하산 인사 개입 등이 끼어들 틈 없도록, CEO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CEO승계 프로그램은 예상치 못한 일로 CEO가 자리를 비워야 할 때 그 대행자에게 인수인계를 매끄럽게 하기 위한 작업인 만큼 엄밀히 따지면 차기 행장을 뽑는 절차와는 별개다. 가령 SC제일은행은 내부에서 CEO승계자 후보를 1~3순위로 3명을 정하고 6개월 단위로 실적을 평가해 점수화하고 있다. 해당자에게는 CEO 승계 후보군이라는 사실을 알려줘 스스로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키울 기회도 준다. 씨티은행 역시 CEO승계 프로그램을 가동, 연 단위로 평가하고 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승계 프로그램이지만 차기 행장을 뽑을 때 참고자료로 쓰일 수 밖에 없다”며 “실적뿐 아니라 청탁 등 부정행위를 했는지도 여러 부서에서 교차 점검하는 등 내부에서 CEO 후보군을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인사철에 외부 인사가 불쑥 끼어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차기 행장 또는 회장을 선출할 때 최종 후보군에 ‘낙하산 인사’를 포함시킨 뒤 “외부 인력 조사 기관 등의 추천을 통해 실력 있는 사람을 넣은 것”이라고 해명하는 국내 금융회사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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