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이 1년의 시차를 두고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됐다. 1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파면된 박 전 대통령이 내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은 사흘 후인 14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지난 보수정권 9년을 가리켜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한 ‘이명박근혜’ 시대라 부르는 데는 ‘적폐와 불법을 양산한 대통령’이라는 공통된 평가가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걸어온 정치적 행보에서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어렵다. ‘앙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갈등과 반목만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그랬던 두 사람이 이제 와서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이게 된 현실은 차라리 아이러니에 가깝다. 각종 불법 행위의 주체 또는 이를 묵인한 무책임한 지도자로서 차례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된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의 질긴 인연을 사진으로 정리했다.
# 30년 인연의 시작
영상으로 남은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1978년 청와대에서 열린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 위촉장 수여식 장면이다. 당시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은 대통령의 딸이자 구국여성봉사단 명예 총재였던 박근혜에게 위촉장을 받으며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은 이듬해 6월 한양대에서 나란히 앉아 제1회 새마음제전 행사를 관람했는데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이 둘 사이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로부터 30년 후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최태민 목사와 박근혜의 관계를 집중 제기했고, 다시 10년 후 박근혜는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 당한다. 국가기록원의 대한뉴스 영상 속에서 이런 운명을 전혀 알지 못하는 세 사람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 정치판에서 엇갈린 두 사람
살아있는 샐러리맨의 성공 신화와 비극적 운명을 맞은 대통령의 딸은 한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두 사람의 행보는 묘하게 엇갈렸다. 정치 입문은 이명박이 빨랐다. 1992년 여당이던 민자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으로 영입된 이명박은 1996년 서울 종로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자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는 이명박 사퇴 후 치러진 19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에 출마해 당선되며 한나라당의 2인자로 급부상했다. 당시 종로 보선에선 노무현이 승리했다.
# 서울시장 이명박, ‘선거의 여왕’ 박근혜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대중교통 체계 개편 등 굵직한 성과를 내며 미래 지도자의 입지를 굳혀 갔다. 이에 반해 박근혜는 한나라당 탈당과 신당 창당, 지방선거 참패 후 한나라당 복귀라는 우여곡절을 자초했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고난이 깊어지는 듯했으나 요동치는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선전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 대충돌 2007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은 후 10여 년간 엇갈려 온 두 사람의 행보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며 그야말로 ‘앙숙’ 관계로 발전한다. 최고 권력자의 딸과 잘 나가는 사업가로서 처음 대면한 지 3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처절한 난타전을 벌였다.
당시 이명박은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의 관계와 그로 인한 국정농단의 개연성을, 박근혜는 이명박에 대해 BBK와 다스, 도곡동 땅 등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두 후보 사이의 갈등은 이명박의 승리와 박근혜의 지지 선언으로 봉합되는 듯했으나 앙금마저 사라지진 않았다. 두 사람이 차례로 대권을 잡은 2008년 이후 이러한 갈등 양상은 당내 또는 당청의 관계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 보복이 보복을 부르다
갈등의 씨앗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전 양상으로 발전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김재원 등 친박 인사들이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자 박근혜는 정치보복, ‘친이 공천’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미디어법, 규제완화 정책 등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이어갔다.
박근혜 정부 들어 또다시 공천 파동이 재현됐다. 이번엔 친이계가 희생양이었다. 친박계는 2016년 20대 총선 공천에서 친이계 및 ‘멀 박(멀어진 친박)’을 배제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결국 패배했고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친이계 대부분은 탄핵에 찬성 표를 던진 후 탈당했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은 11년 전 서로를 향해 제기한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화합과 포용 대신 대결과 반목을 택한 정치 지도자의 몰락이 역사적 교훈임에 틀림없으나 국민이 잃어버린 9년의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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