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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무역전쟁의 시작인가? 새판짜기인가?

입력
2018.03.11 13:5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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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여기에 더해 총수입물량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관세부과는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덤핑ㆍ상계관세를 부과 받고 있던 우리 철강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관세부과조치를 내린 이유는 국가안보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관세를 부과 받은 국가들 중 중국을 제외한 다수는 미국의 가까운 우방들이기 때문이다. 법적 근거는 아이러니하게도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 공산주의에 맞서 우방과의 교역을 강화하겠다고 만들었던 무역확장법이다. 이 법 제232조는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입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철강은 무기 및 인프라 등을 생산하기 위한 기초재로 일정비율 국내생산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이번 조치에 대한 설명이다.

국가안보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에 의해서도 무역보호조치를 내릴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간다면 핵심은 정말로 국가안보를 위협했는가를 다투는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WTO에 제소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빠른 변화를 보이는 글로벌 경제상황에서 지체된 정의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소송에서 이겨도 국내에서처럼 완전하게 교정적 이행을 관철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EU가 곧바로 보복관세를 경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수출선을 다변화해서 위기를 극복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번 조치의 대상이 된 다른 나라들도 새로운 수출선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변화 대상으로 염두에 두었던 EU는 미국에서 막힌 철강이 밀려올까 봐 벌써 긴급수입제한조치인 세이프가드 발동을 고려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 마련이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자국산업보호를 위해 관세부과를 내용으로 하는 스무트-홀리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는 국가 간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면서 상대국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도 침체시키고 말았다. EU는 보복조치로 상징적 의미를 갖는 위스키, 청바지 등에 관세부과를 검토 중이다. 구글 등에 대한 세금문제도 다시 꺼내 들 수 있다. 아직은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이르지만, 만약 자동차와 같은 핵심상품에 추가관세가 부과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내부적으로도 철강을 이용하는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공화당 내에서는 행정명령 보다 상위인 법률을 제정하여 이를 무력화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도 내심은 관세부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지렛대로 하여 무역협정의 판을 흔들고 새로운 협상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당장 한미 FTA 개정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경제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정치가들은 더욱 지지자들을 의식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미국의 산업경쟁력은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을 중심으로 한 통신 및 데이터 산업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제조업 보호가 정치이슈화 되는 것은 지지층 결집의 의미가 크다. 또한 이는 환율을 중심으로 한 화폐전쟁으로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시장변화에 우리는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관세 부과 등 무역전쟁의 전조가 이미 드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조직의 정비는 최근에서야 마무리 되었다. 무역분쟁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부터라도 통상문제에서 개선점을 찾아내고,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상황별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수출전략 및 산업구조도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전쟁이든 무역전쟁이든 대비태세가 중요한 것은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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